"조용한 뱅크런 온다"…美지역은행들 클래리티법 반대 대규모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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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여곳 지역은행 대표하는 ICBA, 30초 법안반대 공익광고 게재
"가상자산에 특혜 주어지면, 그 대가는 지역사회가 치르게 돼" 경고
"일부 지역은행 예금 코인투자 이탈…역대 최대 파괴적 변화 초래할 것"

  • 등록 2026-06-29 오전 8:28:01

    수정 2026-06-29 오전 8:28:01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미국 지역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 이자지급(=보상)을 사실상 허용하는 법안인 가상자산 시장구조법, 일명 클래리티법(CLARITY Act) 입법을 막기 위한 대규모 반대 캠페인에 나섰다. 이들은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될 경우 지역은행 예금이 대거 이탈해 미국 지방경제와 중소기업 금융 시스템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레베카 레이니 ICBA 회장이 면담하고 있다.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레베카 레이니 ICBA 회장이 면담하고 있다.

한적한 미국 중서부 소도시의 여름 아침. 바람에 흔들리는 성조기와 함께 아버지가 아들에게 트랙터 운전법을 가르쳐주고, 평화롭게 산책하는 부부의 모습이 화면에 등장한다. 그러나 곧 양복을 입은 ‘가상자산 내부자들’의 흐릿한 이미지가 나타난다.

최근 미국 워싱턴D.C에서 공개된 30초짜리 공익광고 영상에서 내레이션은 “미국의 가정들은 자신의 돈으로 실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일자리와 성장, 그리고 이용 가능한 대출이며, 가상자산에 특혜가 주어지면 지역사회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 광고는 미국독립지역은행협회(ICBA)가 시작한 수십만 달러 규모의 광고 캠페인의 일환이다. 약 4000개의 미국 지역은행을 대표하는 ICBA는 미국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규제 체계를 결정할 핵심 법안인 클래리티법 저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ICBA는 특히 클래리티법이 스테이블코인 사용자들에게 각종 보상과 인센티브 지급을 허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일반적으로 미국 달러와 같은 법정화폐에 가치가 연동된 가상자산이다. 주로 전통금융과 가상자산 시장을 연결하는 중개 수단으로 활용된다. ICBA는 이러한 인센티브가 예금자들의 자금을 지역은행에서 글로벌 가상자산 플랫폼으로 이동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지역은행 업계는 이로 인해 최대 1조3000억달러(원화 약 1770조원)의 예금이 빠져나갈 수 있으며, 결국 고객 예금에 기반해 제공되던 약 8500억달러 규모의 중소기업 및 농업 대출이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레베카 로메로 레이니 ICBA 회장은 “지역은행들은 미국 전체 중소기업 대출의 60% 이상, 농업 대출의 80%를 담당하고 있다”며 “지역은행은 지역 예금을 지역 대출로 연결해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핵심 엔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현재 형태대로 클래리티법이 통과된다면 미래에는 이러한 대출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결국 유지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실제 JP모건과 같은 대형 은행들은 이미 클래리티법의 일부 조항에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이는 코인베이스의 브라이언 암스트롱 최고경영자(CEO) 등 가상자산 업계와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ICBA의 이번 캠페인은 월가를 넘어 미국 지방사회까지 논쟁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가상자산 제도권 편입 정책이 실제 미국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이는 공화당 내부에서도 이념적 갈등을 촉발하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은 가상자산 산업을 주류 금융으로 편입하려는 트럼프 행정부를 지지할 것인지, 아니면 전통적으로 공화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농민과 지방 중소기업 차입자들의 이해관계를 우선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워싱턴D.C에서 1000마일 이상 떨어진 루이지애나주 북동부에서 영업 중인 개런티은행(Guaranty Bank & Trust)의 트로이 리처즈 행장은 새로운 법안이 지역은행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이번 법안은 지역은행 산업 역사상 가장 큰 파괴적 변화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개런티은행은 이미 가상자산 열풍의 영향을 체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9개 지점을 운영하며 총자산 3억3000만달러 규모인 이 은행에서는 최근 90일 동안 고객 계좌에서 약 4만달러가 가상자산 투자로 빠져나갔다. 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리처즈 행장은 이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대규모 자금 유출의 전조로 보고 있다.

그는 “현재로서는 작은 규모지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나 거래소가 예금에 대한 이자나 보상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면 예금 유출 속도는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은행들이 서서히 예금을 잃어가며 쇠퇴하는 ‘조용한 뱅크런(silent bank run)’이 발생할 수 있느냐가 지금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예금이 감소할 경우 지역은행들은 더 비싼 자금 조달 수단을 찾아야 하며, 이는 결국 지역 주민과 기업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출 감소와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40년 넘게 지역사회와 함께해 온 리처즈 행장은 “가상자산 발행사들은 우리 지역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그들은 농부나 소상공인과 직접 만나 사업 조언을 하지 않고, 지역 어린이 야구팀을 후원하지도 않으며, 지역 학교 졸업앨범 광고를 사지도 않고, 지방세도 납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가상자산 업계는 이러한 주장에 반발하고 있다. 미국 가상자산 업계 단체인 디지털체임버(Digital Chamber)의 코디 카본 CEO는 “ICBA의 캠페인은 지역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진 사업 모델을 경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 업계는 클래리티법을 통해 명확한 연방 규제 체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지만, ICBA는 미국인들이 금융 혁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명확한 규제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가상자산을 보유한 7000만명의 미국인들에게 투명하고 공정한 선택지를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ICBA 측은 경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예금을 유치하려는 모든 사업자가 동일한 규제와 자본 규제를 적용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리처즈 행장은 “우리는 핀테크 기업들과의 경쟁 속에서도 혁신해 왔다”며 “공정한 경쟁이라면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가상자산 업계는 이미 자신들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며 “이제는 우리의 차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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