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판치는 혐오스런 세상, 예술가는 맞서 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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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출신 안헬리카 리델 첫 내한
내달 2~4일 국립극장 '사랑의 죽음…'
잔혹함·신성함 오가는 파격적 공연
추악한 현실 통해 카타르시스 전해

  • 등록 2025-04-30 오후 2:15:52

    수정 2025-04-30 오후 2:15:52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우리는 모두 나약하고, 빛과 그림자가 있고, 괴롭게 살고 있다.”

스페인 출신의 작가·연출가·배우 안헬리카 리델이 3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리델은 오는 5월 2~4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연극 ‘사랑의 죽음. 피비린내가 눈에서 너나지 않아. 후안 벨몬테’를 국립극장 해외초청작으로 공연한다. (사진=국립극장)

스페인 출신의 작가·연출가·배우 안헬리카 리델(59)에게 세상은 ‘거짓’ 그 자체다. 그는 현대인이 완벽함을 추구하며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셜미디어의 ‘좋아요’를 받기 위해 진실을 감추고 “철면피를 쓴 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좋아요’가 판치는 지금의 세상이 “혐오스럽다”고 이야기한다.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연극으로 유럽 공연계에서 화제를 일으킨 리델이 한국 관객과 처음 만난다. 자신의 대표작 ‘사랑의 죽음. 피비린내가 떠나지 않아. 후안 벨몬테’(이하 ‘사랑의 죽음’)를 국립극장 해외초청작으로 오는 5월 2일부터 4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30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리델은 “예술가는 사회에 속해 있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며 “예술가는 사회와 동떨어져 있어야 하며 세상과 전쟁하듯 살아야 한다”고 자신만의 예술 철학을 밝혔다.

이러 리델은 “우리는 모두 인정받고 싶은 시대를 살고 있다. 인정을 받지 못하면 공허하기 때문에 때로는 거짓말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말 추악하다”며 “나는 사람들이 나약함을 인지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극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 출신의 작가·연출가·배우 안헬리카 리델이 3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리델은 오는 5월 2~4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연극 ‘사랑의 죽음. 피비린내가 눈에서 너나지 않아. 후안 벨몬테’를 국립극장 해외초청작으로 공연한다. (사진=국립극장)

‘사랑의 죽음’은 2021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나오는 아리아 ‘사랑의 죽음’과 스페인을 대표하는 투우사 후안 벨몬테(1892~1962)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 연극의 기원을 탐구한다. ‘피비린내가 눈을 떠나지 않아’는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의 한 싯구를 변형해 자주 사용하던 문구에서 차용했다.

벨몬테는 투우를 예술을 넘어선 영적 수행으로 여긴 인물이다. 리델은 “벨몬테와 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목숨을 걸고 작업을 한다는 것”이라며 “벨몬테는 투우가 죽음을 위한 영적 행위라고 했는데, 나에게는 내 작품이 죽음을 위한 영적 행위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립극장 해외초청작 ‘사랑의 죽음. 피비린내가 떠나지 않아. 후안 벨몬테’의 한 장면. (사진=국립극장)

이번 작품 또한 파격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무대 위에는 실제 소의 시체가 등장한다. 리델은 배우로 무대에 올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투우사로 분한다. 면도칼로 자신의 다리를 긋고, 자신의 피로 얼룩진 붉은 천을 흔들며 현실의 잔혹함과 신성함을 동시에 그려낸다.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 배우가 등장하고, 포도주로 축복받는 아기들의 세례를 받는 등 성스러움과 잔혹함이 혼재된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이번 공연은 20세 이상만 관람할 수 있다.

세상의 추악한 이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사랑의 죽음’은 불편한 작품이다. 그러나 리델은 사람들이 추악함을 직시하도록 하는 것이 예술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추악한 진실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관객도 함께 느끼길 바란다. 그는 “우리는 각자만의 악마와 함께 살고 있다. 관객이 내 연극을 통해 자신의 악마를 보길 바란다”며 “내가 하는 일은 창피함을 모르는 이들의 가면을 벗겨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 리델은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도 공개했다. 2012년 영화 ‘올드보이’의 조영욱 음악감독과 작업하고 싶어 한국을 처음 찾았다고 했다. 리델은 “‘올드보이’가 같은 장면을 음악의 변화만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 점이 좋아서 내 작품에도 그런 음악을 활용하고 싶었다”며 “조영욱 감독과 함께 몇 차례 작업했다. 이번에도 공연을 보러 오기로 했다”고 전했다.

스페인 출신의 작가·연출가·배우 안헬리카 리델이 3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리델은 오는 5월 2~4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연극 ‘사랑의 죽음. 피비린내가 눈에서 너나지 않아. 후안 벨몬테’를 국립극장 해외초청작으로 공연한다. (사진=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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