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읽었던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를 떠올려보자. 어린 왕자는 비행기 조종사가 그려준 양 그림에 만족하지 못한다. 아파 보이거나, 너무 늙었거나, 보통 양이 아닌 뿔 달린 숫양이라서다. 그런데 비행사가 종이에 쓱쓱 그린 구멍 뚫린 상자 그림을 건네며 “네가 원하는 양은 그 안에 있다”고 하자 기뻐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상자를 열기 전까지 안에 든 존재는 정해지지 않는다. 상자 안에 어떤 양이 있는지, 실제로 양이 들어 있기나 한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어린 왕자가 자신만의 양을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틀에 갇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것. 어쩌면 이는 인공지능(AI) 디스토피아를 헤쳐 나갈 인간만의 무기일 수 있다.
어린 왕자의 시선으로 감상하면 좋을 영화 한 편이 오는 10일 개봉한다. 일본 영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상자 속의 양’이다. 지난 23일 막 내린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작품으로, ‘어느 가족’으로 칸 황금종려상을 받는 등 거장 반열에 오른 고레에다의 17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개봉에 앞서 지난 5일 만난 고레에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해 나가는 작품”으로 신작 소개를 갈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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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다소 파격적이다. 섬세한 연출과 감정선으로 유명한 고레에다 특유의 드라마에 공상과학(SF)이 섞여서다. 2년 전 아들 카케루를 사고로 떠나보낸 엄마 오토네(아야세 하루카)와 아빠 겐스케(다이고) 부부의 삶에 아들과 꼭 닮은 ‘AI 휴머노이드 로봇’ 카케루(쿠와키 리무)가 배달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줄거리는 이렇다. 건축가 오토네와 목재소를 운영하는 겐스케 부부는 고민 끝에 리버스(REbirth)란 회사의 로봇을 구매한다. 죽은 자식의 사진 등 기록물을 보내주면 똑같은 외모와 성격에 기억까지 가진 휴머노이드가 자식의 빈 자리를 채워준다는 말에 혹하면서다. 오토네는 금세 로봇 아들에 빠져들고, 처음엔 “사람처럼 생긴 다마고치잖아” “로봇 청소기 같은 가전제품일 뿐이야”라며 곁을 내주지 않던 겐스케도 어느새 로봇 카케루를 진짜 카케루와 겹쳐보기 시작한다.
여느 일본 영화처럼 절제된 채 흘러가는 서사 자체는 특별할 게 없다. 할리우드 등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는 오래 전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눈 여겨 볼 점은 고레에다가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통해 꾸준히 관철해 온 질문인 ‘가족이란 무엇인가’다. ‘어느 가족’ ‘브로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고레에다는 비혈연 공동체의 관점에서 가족을 바라봐 왔다. 이른바 ‘대안 가족’ 개념. 피가 섞이지 않더라도, 피를 나눈 관계보다 더 끈끈한 유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상자 속의 양’은 무생물(AI 휴머노이드)까지 가족이 될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물론 일반적인 시선처럼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이를 부정한다. 카케루의 할머니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저런 로봇은 치우고 아이 한 명을 더 낳으라 말하고, 오토네와 겐스케도 로봇은 가족이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카케루의 반품을 결정하기도 한다. 상식이라는 틀 속에서 가족은 피를 나누고 살을 맞대야만 하기 때문이다. 카케루 역시 자신이 인간과는 다르다는 생각으로 부모이자 주인의 품을 떠나기로 한다.
고레에다는 이 지점에서 모든 것들을 상자에 밀어 넣는다. AI와 인간, 차가운 금속으로 조립된 기계와 따뜻한 햇살 품은 나무, 한 침대를 쓰지만 서로의 상처를 이해 못하는 부부 등 이질적 대립항들을 상자 속에서 뒤섞는다. 상자 안 풍경은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인다면 그 자체로 가족’으로 수렴된다.
이를 이해할 힌트는 영화의 핵심 미장센으로 여러 차례 등장하는 건축 설계 모형이다. 이 모형을 예로 든 고레에다는 “유리와 나무처럼 이질적 존재가 어우러지곤 한다”며 “공존은 분명 어렵지만 재밌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고레에다의 생각이 정답은 아니다. 가족을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일지는 상자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에 달렸다. 칸에서 유럽 등 서구권 평단이 인간과 휴머노이드가 공존을 모색한다는 결말을 두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타협”이라고 비판한 게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급격한 AI의 발달로 AI가 인류 지성을 추월하는 순간 맞닥뜨릴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휴머노이드를 가족이 아닌 잠재적 경쟁자로 상정하는 관점에선 고레에다의 서사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를 두고 고레에다는 “아무래도 인간중심으로 문명을 일군 서양에선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했다.
고레에다의 전작들을 좋아하는 영화 애호가라면 다소 아쉬울 순 있다. 커다란 이야기를 펼치기 위해 곳곳에 뿌려둔 작은 이야기들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특출난 아역을 고르는 고레에다의 캐스팅 안목은 기대해도 좋다. 20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쿠와키 리무의 천진난만한 연기는 막이 내린 뒤에도 잔상이 남는다.
유승목 기자

2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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