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글로벌 관세 불확실성에 발목이 잡히면서 실적 혹은 자산 대비 주가 수준이 현저히 낮은 저평가주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가에선 5월 증시도 지루한 횡보장이 예상돼 상단이 열려 있는 저(低)주가순자산비율(PBR)주를 담기에 좋은 타이밍이라고 진단했다. 현금을 바탕으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가능하고 PBR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종목에 주목할 것을 권했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코스피 PBR은 0.89배 수준이다. 지난달 9일에는 0.8배까지 내려가 코로나19 팬데믹(2020년 5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PBR은 현재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눠 구하는데, PBR이 1배 미만이면 주가가 청산 가치보다 낮다는 의미다. PBR은 금융당국이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지수 선정 시 기업의 저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지표 중 하나로 활용된다.
최근 코스피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인은 미 관세 불확실성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를 부과하면서 공급망의 이동, 이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 등이 기업의 감익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주가를 짓누르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직 관세 여파가 확인되지 않아 기업들이 중장기 사업 계획을 구체화할 수 없게 되면서 신규 투자나 주주 환원 규모를 공개하지 않는 점도 주가를 끌어내리는 배경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총 56건으로 정점을 찍었던 밸류업 공시는 지난달 0건으로 떨어졌다.
지난해부터 정부와 금융당국이 추진한 '밸류업 프로그램'이 정치 불확실성에 주춤하고 있는 것도 기업들의 저PBR 탈피를 지연시키고 있다. 오는 6월 조기 대선이 예정되면서 현 정부가 추진했던 '밸류업 공시' 우수 기업 표창 등의 제도적 연속성에 물음표가 달리면서다.
여기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21일 국내 17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과의 간담회에서 "PBR이 0.1배, 0.2배인 회사들이 있지 않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하든지 해서 빨리 청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밸류업 대신 '집중투표제 활성화' 등 상법 개정 등에 방점을 찍을 것을 예고했다.
그러나 증권가는 현재 코스피 PBR이 역사적 저점까지 내려온 데다 이번 관세 국면에서 지지선을 확인하는 등 밸류에이션 매력이 확실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유명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과거에도 그랬듯 코로나19 팬데믹 사례를 제외하면 코스피 PBR 0.8배는 국내 주식 시장에서 의미 있는 기준선으로 4월 초 급락 국면에서도 지지선 역할을 했다"며 "극단적인 실적 하향을 감안해도 이를 환산한 PBR 0.8배는 코스피 2540~2580선 수준으로 저평가 매력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저PBR 기업 중 기업의 이익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이나 부채비율을 고려한 뒤 향후 실적이 뒷받침될 수 있는 종목을 선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향후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가능하고 이를 바탕으로 ROE 개선이 예상돼 PBR 상승 가능성이 종목으로는 △셀트리온 △네이버 △POSCO홀딩스 △SK △삼성전기 △LG생활건강 △한국금융지주 △금호석유화학 △이마트 △HDC현대산업개발 등이 꼽혔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