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짜미 감독 선임, 예고된 실패… “폐쇄적인 인맥 카르텔 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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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이대론 안 된다] 〈상〉 공정한 절차로 신뢰부터 쌓아야
2년전 홍명보 지휘봉 잡을 때 협회장 지시로 기술이사가 관여
박지성 “절차 무시한 선임 참담”… 洪감독, 12년전 대회 실패 되풀이
스리백 전술 고집, 대응전략 부재… 남아공전 손흥민 선발 제외 ‘악수’

이강인(오른쪽에서 네 번째) 등 한국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28일(한국 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의 치바스 베르데 바예 훈련장에서 굳은 표정으로 훈련하고 있다. 다른 조 경기 결과에 따라 32강 토너먼트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었던 한국은 25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에도 훈련을 계속해 왔다. 하지만 이날 조 3위 12개 팀 중 최종 10위가 되면서 상위 8개 팀에 주어지는 32강 티켓 획득에 실패했다. 사포판=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이강인(오른쪽에서 네 번째) 등 한국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28일(한국 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의 치바스 베르데 바예 훈련장에서 굳은 표정으로 훈련하고 있다. 다른 조 경기 결과에 따라 32강 토너먼트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었던 한국은 25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에도 훈련을 계속해 왔다. 하지만 이날 조 3위 12개 팀 중 최종 10위가 되면서 상위 8개 팀에 주어지는 32강 티켓 획득에 실패했다. 사포판=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박지성(현 축구 해설위원)은 2024년 7월 홍명보 감독이 다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감독 선임 과정의 불공정 논란과 특혜 의혹에도 이미 한 차례 월드컵에서 실패했던 홍 감독을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홍 감독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를 1무 2패로 마쳐 탈락한 뒤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박지성은 “절차를 밟아 감독을 선임한다는 약속 자체가 무너졌다. 대표팀이 쉽사리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홍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으로서의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나를 버렸다. 이제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고 했다. 이번이 대표팀을 위한 ‘마지막 봉사’라고도 했다. 하지만 홍 감독은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12년 전의 실패를 반복했다. 대회 개막 1년을 앞두고 ‘구원투수’ 격으로 지휘봉을 잡은 브라질 월드컵과 달리 이번엔 2년여의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이후 대한축구협회는 뼈아픈 반성을 담은 백서를 발행했다. 협회는 백서에 “변화 없는 전술과 다양한 경기 상황 대응 전략의 부재, 상대 팀 정보 파악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고 썼다.

당시 지적은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한국 대표팀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 출신인 주장 손흥민(LA FC)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등 역대 최강의 선수단을 구성했다.

하지만 홍 감독은 이번에도 이해하기 힘든 선수 기용과 전술에 대한 고집으로 한국 축구에 굴욕을 안겼다. 비기기만 해도 32강 토너먼트에 오를 수 있었던 25일 조별리그 A조 3차전 남아프리카공화국전이 대표적이다. 이 경기에서 홍 감독이 상대 팀에 가장 위협적 공격수인 손흥민을 선발에서 제외한 결정은 ‘악수 중의 악수’였다. 남아공은 주전 미드필더 2명이 경고 누적 등으로 한국전에 결장해 정상 전력도 아니었다. 초반부터 주도권을 내준 한국은 시종 끌려다니다가 0-1로 패했고, 결국 32강행에 실패했다.

홍 감독은 경기 막판 골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고집스럽게 수비에 무게중심을 둔 스리백 전술을 고수했다. 홍 감독은 역전승을 거둔 1차전 체코전(2-1 승)과 선전 끝에 아쉽게 패한 2차전 멕시코전(0-1 패)에서도 스리백 전술을 썼다. 과거 홍 감독과 함께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합작했던 골키퍼 이범영은 “홍 감독님은 한번 전술적으로 성공하면, 그 전술로 계속 밀어붙이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이 27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사포판의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훈련장에서 굳은 표정으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지휘해온 한국 축구 대표팀은 이날 조별리그 경기 결과 조 3위 팀 간 경쟁에서 32강 진출 마지노선인 8위 밖으로 밀려나 탈락이 확정됐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건 2018년 러시아 대회 이후 8년 만이다. 사포판=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한국 축구 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이 27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사포판의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훈련장에서 굳은 표정으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지휘해온 한국 축구 대표팀은 이날 조별리그 경기 결과 조 3위 팀 간 경쟁에서 32강 진출 마지노선인 8위 밖으로 밀려나 탈락이 확정됐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건 2018년 러시아 대회 이후 8년 만이다. 사포판=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한국의 조별리그 탈락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실패다. 체코와 남아공 등 한 수 아래로 여겨지는 국가들이 한 조에 포함된 최상의 조 편성과 A조 국가 중 가장 짧은 조별리그 이동거리(약 637km), 고지대 적응을 위한 충분한 사전 캠프 기간(약 2주) 등 완벽한 환경에도 홍명보호는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남아공과의 3차전에선 선수들이 체력이 뚝 떨어진 모습을 보였는데도 홍 감독은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다”라고 말해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이영표 해설위원은 “과거엔 우리가 탈락을 하더라도 독일을 이겼다(2018 러시아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 때는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포르투갈을 이기고 16강에 갔다”며 “하지만 이번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21세기 대한민국의 월드컵 본선 경기 사상 가장 무기력하게 졌다. 그렇게 허탈하게 탈락하니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남아공전이 끝난 이후 박지성 해설위원은 “2014년의 좋지 않았던 월드컵을 그대로 반복했다.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가고 있는 곳에서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홍 감독에게 다시 지휘봉을 안긴 대한축구협회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손흥민이 24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루페의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A조 조별리그 최종 3차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0-1로 패하자 머리를 감싸며 경기장을 걷고 있다. 과달루페=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손흥민이 24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루페의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A조 조별리그 최종 3차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0-1로 패하자 머리를 감싸며 경기장을 걷고 있다. 과달루페=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축구협회는 2024년 2월 독일 출신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을 경질한 후 외국인 감독 선임에 무게를 두고 5개월 가까이 대표팀 감독 자리를 비워둔 끝에 프로축구 울산을 이끌던 홍 감독을 선임했다. 2024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축구협회 특정감사 결과에 따르면 감독 추천 권한이 없는 이임생 전 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정몽규 축구협회장 지시를 이유로 불투명하게 면접을 진행한 뒤 홍 감독 내정에 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을 이끌 감독을 선임하는 전력강화위원회(전강위)의 위원으로 활동했던 국가대표 출신 박주호는 “(전강위 회의 당시) 차기 사령탑 후보로 볼 만한 외국인 감독의 이름을 이야기하면 누군지 모르는 위원들도 많았다. 임시 감독을 뽑을 땐 (충분한 논의 없이) 다수결로 뽑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월드컵 시작 전부터 대회 일정이 끝나면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내년 아시안컵까지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홍 감독 역시 사퇴가 불가피하다.

한국 축구는 원점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팬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전문적이고 공정한 감독 선임 시스템을 구축하고, 대표팀 운영과 선수 육성 방안 등도 새로 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득권을 가진 몇몇 축구인만의 카르텔을 깨야 한다. 박찬하 해설위원은 “한국 축구가 축구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자각해야 한다. 현재 한국 축구는 폐쇄적인 부분이 많고, 세계적인 트렌드를 좇아가지 못하고 있다. 세계 축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들이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과달라하라=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조영우 기자 je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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