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GPU 갈증’ 해소한 젠슨 황 깜짝 선물
황무지 개간할 곡괭이-삽은 장만한 셈
엔비디아 키운 건 ‘영감(靈感)보다 절박함’
한국 AI, ‘한 달 뒤 파멸’이 모토 돼야 성공
2023년 말 미국 팰로앨토의 한 초밥집에서 이들 억만장자 3명이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후일 엘리슨은 이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일론과 나는 애걸하고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초밥을 먹으며 애걸했다.” 엔비디아의 GPU(AI 칩)를 더 팔아달라는 ‘애걸’이었다. ‘사는 쪽이 갑(甲), 파는 쪽이 을(乙)’이라는 비즈니스 세계의 영원한 불문율조차 적용되지 않는 존재. 이것이 현재 엔비디아와 젠슨 황의 위상이다.
경주 APEC이 1일 폐막했다. 21개국 정상급과 1700명의 글로벌 기업인들이 모였지만, 최고의 ‘신 스틸러’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젠슨 황일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과 같은 거물들과 함께 시끌벅적한 치킨집에서 치맥 회동을 하는 모습은 ‘역대 최고의 몸값을 가진 배우’ 3명이 펼쳐내는 ‘거리의 서민 먹방’이었다. 닭 뼈를 능숙하게 발라낸 뒤 기름 묻은 손가락을 쪽쪽 빠는 젠슨 황의 모습은 ‘저래서 부자 되는구나’, ‘어쩌면 치킨 먹는 국룰을 저렇게 완벽하게…’ 하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고선 다음 날 고성능 GPU를 26만 장씩이나 공급하겠다는 엄청난 선물 보따리까지 풀어놨다. 영원한 ‘5000만의 깐부’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현재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고성능 GPU는 민관을 통틀어 4만 장 수준이다. 26만 장이 다 들어오면 한국은 GPU 보유 일약 세계 3위가 된다. 동시에 젠슨 황은 “한국이 AI 분야 리더가 될 가능성은 무한대”라며 우리의 잠재력을 극대치로 인정하고, 자신감까지 한껏 고취시켰다. 그가 한국을 떠난 지 몇 시간 뒤에는 엔비디아의 공식 유튜브 계정에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나라’로 시작해서 ‘기적이 계속되는 바로 이곳 한국에서’로 마무리되는 헌정 영상이 올라왔다. 감동적인 ‘엔딩’이다.젠슨 황의 헌사에 취하다 보면, 우리나라가 ‘AI 3대 강국’ 초입에 금방이라도 들어설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만은 않다. 고성능 GPU만 하더라도 미국이 현재 갖고 있는 것은 2000만 장이 넘는다. 26만 장 확보는, 황무지를 개간할 삽과 곡괭이를 장만한 정도다.
또한 GPU는 건축에 비유하면 단순한 ‘벽돌’일 뿐이다. AI를 개발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건물’에 해당하는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생명인 데이터센터 건립은 이중삼중의 까다로운 규제에 사사건건 발목이 잡힌다.
그리고 데이터센터를 가동하려면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하다. 전기가 없는 초고층 빌딩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재앙’이다. 미국의 빅테크들이 이미 가동을 중단한 원전까지 사들여 독점 공급 계약을 맺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국회 심의까지 거쳐 확정한 원전 건설 계획을 놓고, 주무장관이 ‘백지화 검토’를 운운하는 실정이다. 안정성이 떨어지는 신재생 에너지로 AI 산업의 전력 수요를 메운다는 것은 허황된 꿈과 같은 이야기다. AI 혁명에 하드웨어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하지만 한국은 AI 인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라다. 현재 AI 기업의 82%가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고, 2027년까지 1만2800명의 신규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나마 있는 인력도 줄줄이 해외로 새어 나가는 중이다. 한국은 세계 5위 ‘AI 인재 유출국’이다. 그런데도 이를 해결해 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국회가 특별법을 통해 추진한다는 AI 관련 산업 규제 완화 및 지원 방안도 차일피일이다.젠슨 황이 게임용 그래픽 카드 제조회사였던 엔비디아를 시가 총액 5조 달러(약 7154조 원)의 초우량 기업으로 키워낸 가장 큰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회사는 앞으로 30일 후 파산합니다.” 젠슨 황이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강조했던 엔비디아의 모토에 답이 있다. ‘절박함’이다.
젠슨 황의 전기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승리의 어머니는 영감(靈感)이 아니라 절박함이었다.’
한국이 ‘AI 3대 강국’이 되려면 AI 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 엔비디아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앞으로 30일 후 한국 AI 산업은 망합니다.” 대통령도, 정부도, 여당도, 야당도, 기업도 이런 절박함이 없으면 젠슨 황이 고성능 GPU를 100만 장, 200만 장 가져다 안긴들 ‘AI 3대 강국’은 공허한 메아리로 떠돌게 될 뿐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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