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당시 초등학생들에게 '귀가 시계'로 불리는 드라마가 있었다. 슈퍼컴 나라의 공주 컴미(전성초)가 남자 주인공 명태(김성민)와 친구가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요정 컴미'가 바로 그 주인공.
'요정 컴미'는 어린이 드라마 열풍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당초 50부작으로 계획됐던 방송은 예상치 못한 뜨거운 인기에 476부작으로 대폭 확대됐고, 러닝타임도 기존 20분에서 30분으로 연장되는 등 방송계에 이례적인 기록을 남겼다. '요정 컴미'의 기세를 이어 후속작이었던 '매직키드 마수리'도 대박이 났던 바다.
많은 80~90년대생들이 안경을 끼고 똑 부러지는 말투를 구사하던 컴미의 모습을 기억할 테다. 1989년생인 전성초가 컴미를 처음 연기하던 때는 12살이었다. 작품의 인기에 컴미와의 인연은 무려 2년이나 이어졌었다. 그 이후 그녀는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췄고, 수년이 지나 통·번역가로 일하고 있는 근황이 전해져 한 차례 화제가 됐다.
최근 서울 모처에서 만난 전성초는 여전히 싱그러운 웃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2023년 9월 2살 연하의 비연예인 남편과 결혼해 지난해 아들을 출산한 그는 "항상 저만을 위해 살다가 이제는 24시간 대기를 하고 있다. 육아는 출퇴근이 없는 일이다. '힘들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망치로 머리를 한대 딱 얻어맞은 느낌"이라며 웃었다.
전성초는 현재 EBSe 5학년 초등영어 강의를 진행하며 '워킹맘의 삶'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통역과를 졸업하고 각종 영화 및 드라마에 통·번역으로 참여했고, 개인 수업도 진행해봤지만 초등학생을 상대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임신 사실을 밝혔을 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이 뚝 끊겼었다. '이렇게 사회에서 도태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프리랜서는 불러줘야 일을 할 수 있는 거라서 복귀에 대한 두려움이 컸는데, EBS에서 너무 좋은 기회로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내겐 새로운 도전"이라고 말한 전성초는 "어른들을 가르치는 것과는 다르게 최대한 쉽게 설명해야 한다. 또 교육 방송이라 절대 틀리면 안 된다. 외래어 표기법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정말 선생님의 마음으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도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엄마가 되고 나서 교육 방송을 하게 되니 마음가짐이 더욱 남다르다고도 했다. 전성초는 "예전 같으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라면 '잘 모르겠다'고 했을 텐데, 나도 엄마가 되고 나니 확 관심이 가더라"고 털어놨다.
'요정 컴미'를 연기하던 아역배우에서 EBS 영어 선생님이 되기까지 그는 매우 확실하고 또렷한 삶의 방향 전환을 겪었다.
전성초는 '요정 컴미' 종영 직후 떠올렸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시기였다. 갑작스럽게 방송 분량이 늘어나면서 학업을 거의 소화하지 못했던 그는 "좀 힘들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어딜 가든 자신을 알아보는 시선이 따라다녔다고 했다. 한 번은 사촌 동생 운동회를 응원하러 갔다가,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왜 와서 우리 행사를 망치냐"는 말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사촌 언니를 따라 말레이시아 유학길에 올랐다. 전성초는 "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갔는데 일주일 지나자마자 맨날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했다"며 미소 지었다.
현지에서 적응하며 비로소 '학생의 삶'을 만끽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지리학, 환경학을 전공했다. 전성초는 매 순간 가슴이 시키는 대로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공 선택 이유 역시 "지리와 환경을 제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심플하게 밝혔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통역 아르바이트를 했고, 이어 아리랑TV, 아리랑 라디오, tbs eFM 등에서 리포터로 일했다.
통·번역가로는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아가고 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그리스 로케이션 촬영에 통역으로 참여한 걸 시작으로, 영화 '휴민트'·'범죄도시2', 디즈니 플러스 '최악의 악', 넷플릭스 '서울대작전' 등의 번역을 맡았다. 영어 코칭 및 통역으로 영화 '타이고'·'모가디슈'·'싱글라이더'·'인천상륙작전', 넷플릭스 '더 리크루트'·'센스 8',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등에도 함께했다. 현재는 디즈니 플러스 '내가 죄인이오' 번역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회인으로서 일한 지 어언 10년. 그러나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건 삶의 또 다른 페이지로 진입한 것과 같았다. 출산 37일 만에 소화했던 통역 일정에서 그는 옷이 맞지 않아 지퍼를 연 채로 행사를 마쳐야 했고, 호텔 화장실에서 유축까지 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임신, 출산, 육아는 인간으로서 저를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드는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이제는 한 아이의 부모로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제 일에 임하게 돼요. 여태까지와는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게 될지 저 역시도 기대가 되고 하나하나 조급해하지 않고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계속 관심 가지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너무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지켜봐 주세요!"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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