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앙금떡 메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밖에서 못 먹던 유행 디저트까지 나와서 깜짝 놀라곤 합니다.” (장우석 육군훈련소 26연대 훈련병)
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웃돈 지난달 29일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 병영식당. 막 오전 훈련을 마치고 ‘꿀 점심’을 비워낸 훈련병들이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tvN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 속 악명 높은 ‘명순조(명태순살조림)’나 ‘묵사발 감자(감자조림의 멸칭)’ 같은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메뉴는 양식과 일식은 물론 뷔페식까지 다양해졌고 ‘두끼’ ‘신룽푸마라탕’ 같은 유명 외식 브랜드와 협업한 요리도 등장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첫 골이 터졌을 때는 직접 튀긴 치킨이 특식으로 나오고 동절기에는 참치 해체쇼 같은 이벤트도 열린다.
120명이 6500명 세끼 ‘뚝딱’
육군훈련소 7개 연대 중 4개 연대 식당은 현재 민간 업체가 운영하고 있다. 23연대는 풀무원푸드앤컬처, 26연대는 아워홈, 27연대는 동원홈푸드, 30연대는 삼성웰스토리가 맡았다. 나머지 3곳은 군 직영으로 운영된다. 연대당 훈련병 인원은 1500~1600명 선. 각 업체 식당 근무 인원은 30명 전후로, 총 120여 명이 6000명 넘는 훈련병 하루 세끼를 책임지고 있다.과거 군 급식은 요리 경험이 전무한 취사병들이 대규모 식단을 전담하는 구조라 한계가 명확했다. 튀김류가 설익거나 배식량 가늠에 실패해 장병들이 정량을 받지 못하는 일도 잦았다. 그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불거진 부실 급식 논란을 계기로 민간 개방이 급물살을 탔다.2023년 13개 시범 부대로 첫발을 뗀 군 급식 민간 위탁 사업은 지난달 기준 49개 부대(군 전체 급식 규모의 약 15%)로 확대됐다. 한승민 육군훈련소 군수과 중사는 “고강도 훈련이 진행되는 교육부대를 시작으로 위탁 급식 대상 부대를 늘려가는 중이다. 민간 위탁 도입 이후 메뉴의 질과 맛이 상당히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꿀맛 지키기 위한 땀방울
이날 오전 10시, 동원홈푸드가 위탁을 맡은 27연대 부엌에서는 벌써부터 밥 냄새가 훅 끼쳤다. 조리사들은 2인 1조로 길게 늘어선 대형 밥솥들을 식당으로 나르고 있었다. 한 솥당 40~50인분으로, 모두 1800여 명이 먹을 분량이다.같은 시간 삼성웰스토리의 30연대 식당은 뷔페식 점심 채비를 마쳤다. 돈목살 스테이크, 계란볶음밥, 치킨텐더, 파르팔레 토마토파스타, 하몽 카프레제 등 시중 레스토랑에 버금가는 라인업이다.
점심시간은 11시 반에 시작되지만 주방 시계는 새벽부터 돌아간다. 오전 7시 조식을 끝내자마자 점심 준비에 돌입해, 단 3시간 만에 많게는 10가지 메뉴를 완성해야 한다. 조리 인력들은 “새벽 4시 반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일이 허다하다. 기업에서 일할 때보다 근무 강도가 10배는 센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대규모 식단을 준비하다 보니 음식의 질과 속도를 동시에 챙기는 것이 관건이다. 이병일 삼성웰스토리 점장은 “매니저, 영양사, 조리장, 조리사 등 파트 간 호흡이 엇갈리면 장병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업무가 긴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기업 급식처럼 차림새까지는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아쉽다”고 했다.
야외 훈련장으로 직접 식사를 배달하는 ‘추진식’은 가장 고된 미션이다. 6주 훈련 기간 동안 7~10회 진행하는데 궂은 날씨와 변동 잦은 훈련 일정 등 대처해야 할 변수가 많다. 이길영 동원홈푸드 조리실장은 “야외에서 수천 명분 식사를 오차 없이 제공해야 하는 난도 최상의 작업이다. 3000명분 튀김을 준비하던 중 야외 조리 기구 화력이 달려 배식 시간 내에 다 튀겨 내지 못해 진땀을 뺀 적도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음식은 훈련소의 유일한 위안”
“저희 업체 ‘추구미’는 신선함과 독특함입니다. 베트남 이탈리아 스페인은 물론 아프리카 수단 요리로 구성한 뷔페도 선보였죠.”(삼성웰스토리)“균형 잡힌 맛은 물론 따뜻한 정을 담아 특별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데 자신 있습니다. 고된 훈련을 받는 신병들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바로 식사 시간이거든요.” (동원홈푸드)
최근 급식 업체들은 수익 구조가 빠듯한 아파트 조식 시장 대신 적정 단가로 대규모 수요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군 급식을 매력적인 신시장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업체 간 수주 경쟁은 해가 갈수록 치열해지는 추세다. 전체 군 급식 시장은 약 2조 원, 민간 위탁 시장은 약 300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훈련소 연대들이 인접해 있다 보니 업체 간 신경전도 벌어진다. 매달 업체와 군 관계자가 참여하는 회의는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한 관계자는 “경쟁 업체 식단을 보며 ‘아차!’ 싶을 때도 있고 뿌듯할 때도 있다. 서로의 식단을 참고해 성장의 디딤돌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각 업체는 장병들 입맛을 잡기 위한 차별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삼성웰스토리는 메뉴의 희소성과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동원홈푸드는 균일하고 안정적인 맛과 참치 같은 동원만의 고유한 색깔을 강조한다. 아워홈은 유명 외식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한 특식 제공에 강점이 있다. 풀무원푸드앤컬처는 식물성 단백질 위주의 건강 식단과 엄격한 위생 관리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제육 vs 마라탕… 승자는?
영양사들도 고민이 깊다. 식단 편성의 핵심은 활동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20대 남성 입맛과 훈련 강도에 잘 맞추는 것이다. 변수현 삼성웰스토리 영양사는 “성인 권장 열량보다 200~400kcal 정도 높게, 훈련 강도가 센 날은 그 이상으로 든든하게 식단을 짠다”고 했다.메뉴는 장병 선호도 조사와 ‘A 대 B’ 선택 결과를 적극 반영한다. 여러 선택지의 결과를 조합해 메뉴별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보통 돈가스와 제육볶음이 맞붙으면 돈가스가, 제육볶음과 마라탕이 붙으면 제육볶음이 승리한다. 김보영 동원홈푸드 매니저는 “돈가스, 제육, 국밥은 장병들의 영원한 ‘솔푸드’라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고 했다.
입대 전 사회에서 즐기던 ‘맥모닝’이나 핫도그 같은 메뉴 인기도 뜨겁다. 조형규 풀무원푸드앤컬처 점장은 “Z세대 장병들은 색다른 메뉴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같은 음식이라도 마라탕이 아닌 트렌디한 이름을 붙이면 반응이 훨씬 좋다”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선호가 높은 만큼 퓨전 메뉴도 적극 개발하려 한다”고 했다.
메뉴 개발에는 조리사나 훈령병뿐 아니라 군 간부들까지 힘을 보탠다. 변수현 영양사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아이디어를 얻는다”며 “가라아게, 라멘 같은 특식은 부대 관계자들이 제안해 탄생한 메뉴”라고 귀띔했다.
유행하는 외식 브랜드와 디저트는 물론 군 관련 미디어에 노출된 음식도 발 빠르게 응용한다. 동원홈푸드는 이달 ‘취사병 전설이 되다’ 드라마 속에서 화제가 된 옛날식 햄버거를 선보인다. 풀무원푸드앤컬처는 매주 ‘스테프핫도그’ ‘땅스 부대찌개’ ‘하오섬’ 등 인기 외식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
군 간부들은 급식 질 개선이 훈련병 심신 관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한다. 윤제상 육군훈련소 정훈장교는 “훈련은 에너지 소모가 큰 활동이라 밥심이 중요하다”며 “점심과 저녁 메뉴에 대한 기대감은 고된 훈련을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이라고 했다. 다른 장 역시 “요즘은 메뉴가 다양화되다 보니 식단이 주는 설렘이 더 커진 것 같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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