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 전쟁이 서방 보수 정당의 힘을 약화하고 있다. 동맹에 관계없이 고율 관세를 부과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피해가 현실화하자 ‘반(反)트럼프’ 메시지를 앞세운 진보 집권당 지지율이 다시 높아진 것이다. 선거 초점이 ‘물가 급등 책임론’에서 ‘대외 불안’으로 옮겨가자 캐나다에 이어 호주에서도 총선 때 집권당이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 역전 성공한 집권 노동당
오는 3일 호주 총선에서는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이끄는 진보 집권당 노동당과 보수 야당인 자유당·국민당 연합이 맞붙을 예정이다. 야당 연합은 피터 더턴 자유당 대표가 이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1월까지만 해도 노동당의 고전이 예상됐다. 2022년 노동당 집권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집값 급등으로 유권자의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호주 여론조사업체 뉴스폴에 따르면 노동당 지지율은 2022년 7월 56%에 달했으나 4개월여 만에 50%로 떨어졌고 지난해 10월부터는 야당 지지율에 뒤처졌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선 노동당 지지율이 다시 야당 연합에 앞서며 역전에 성공했다. 뉴스폴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조사에서 노동당(52%)과 야당 연합(48%) 지지율 격차는 4%포인트로 벌어졌다. 총리 후보에 대한 유권자 선호도에서도 앨버니지 총리는 더턴 대표를 51% 대 35%로 크게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관세 공격에 ‘반트럼프’ 정서 확산
지지율 반전은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전쟁이 촉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과 가까운 동맹국 중 하나이자 대미 무역적자 국가인 호주에도 관세 공격을 가했다. 호주의 주요 수출품인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10% 상호관세도 예고했다. 그 결과 총선 쟁점은 노동당의 경제 실정에서 트럼프발(發) 대외 불안으로 옮겨졌다.
더턴 대표와 자유당·국민당 연합의 ‘트럼프 따라하기’가 역효과를 냈다고 로이터통신은 평가했다. 더턴 대표는 ‘워크’(woke·깨어 있음) 반대, 호주판 정부효율부(DOGE) 도입을 통한 공공 부문 조정 등 트럼프 행정부와 비슷한 정책 및 발언을 내놨다. 더턴 대표가 호주판 DOGE 장관으로 내정한 저신타 프라이스 상원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따라 ‘호주를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야당 연합에 트럼프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로이터통신은 “보수 성향인 자유당이 전통적으로 미국과 가깝다는 인식 때문에 더턴 대표가 반감을 샀다”고 진단했다.
다만 노동당은 단독으로 과반(하원 150석 중 76석 이상)을 확보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무소속 의원 등을 끌어들여 연립 내각을 구성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호주 유권자는 점점 양대 정당이 아닌 대안을 찾고 있다”며 “제3정당 후보의 득표율이 1980년 8.5%에서 2022년 30%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