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숫자 이면의 무거운 리스크
“매출의 30%.”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꺼내 든 카드는 단순하다. 과징금 숫자를 키우는 것이다.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에 대한 과징금 상한을 현행 관련 매출의 6%에서 20%로 대폭 올리고, 담합 등 공동행위의 과징금 상한도 30% 수준까지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반복 위반에 대해서는 가중폭을 확대해 일정 횟수를 넘기면 최대 100%까지 얹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제는 세게 때리겠다”는 선언이다.
숫자는 강하다. 언론 헤드라인에 오르기에도, 정책 의지를 과시하기에도 더없이 좋다. 그 자체로 강력한 메시지다. 하지만 공정거래 질서를 세우는 일이 과연 숫자를 키우는 문제일까. 규제의 세계에서 숫자는 종종 상징이지만, 상징이 곧 해법은 아니다. 이번 정책의 언어는 시원했다. 부당이익보다 더 큰 불이익을 주면 위법은 줄어든다는 논리다. 듣기에도 통쾌하다. 그러나 정책은 통쾌함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시장은 훨씬 더 복잡 미묘하다.
얼마 전 한 기업의 전략회의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이 사업 모델, 위법은 아니지?” 사장의 질문에 담당 임원은 잠시 침묵한다. “명백한 위법은 아닙니다만… 조사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 한 문장에 회의실 공기가 바뀌었다. 과징금 상한이 관련 매출의 20, 30%에 이르는 현실이라면, ‘가능성’이라는 단어 하나가 수천억 원의 리스크로 환산된다. 결국 해당 사업은 연기됐다. 법을 어길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다. 도무지 계산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가두어버린 혁신의 발걸음
기업이 두려워하는 것은 높은 숫자만이 아니다. ‘최대 얼마까지 나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도 문제이다. 과징금 상한이 높아질수록, 그 상한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 하더라도, 심리적 영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과징금은 원래 경제적 계산을 바로잡는 장치다. 위반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더 큰 비용을 부과하여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 그런데 상한을 몇 배씩 끌어올리는 순간, 계산은 달라진다. 이제 기업은 ‘위법을 하면 안 된다’는 당연한 전제 위에, ‘혹시라도 애매한 판단이 위법으로 바뀌면 회사 전체가 휘청일 수 있다’는 공포까지 더해 계산하게 된다. 그 공포는 법 위반 억지력을 넘어, 합법적 사업 판단까지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경쟁법은 늘 회색지대를 품고 있다. 공동 연구개발이 혁신 촉진인지 담합의 씨앗인지, 플랫폼의 알고리즘 설계 변경이 효율성 제고인지 배제 전략인지, 판단은 사후적으로 내려진다. 그 사후적 판단의 결과가 기업 매출의 상당 비율에 해당하는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면, 경영진은 본능적으로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는 선택이 늘어난다. 혁신의 속도는 느려진다.
공정위는 억지력을 말한다. 총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억지력은 단순히 과징금 숫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예측가능성과 일관성에서 나온다. 기업이 “이 선을 넘으면 이런 결과가 따른다”는 점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 때 자발적 준법은 강화된다. 반대로 “어디까지가 선인지 모르겠다”는 인식이 퍼지면, 위법은 줄어들지 몰라도 합법적 모험도 함께 줄어든다. 새로운 제휴모델, 공격적 판매전략, 데이터 기반 신사업들은 회의실에서 조용히 접힌다. 법 위반 위험을 줄이고자 혁신까지 고사시키는 역설이 생긴다.
규제의 완성은 숫자보다 정교한 균형
과징금의 성격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징금은 본래 행정제재다. 시장 질서를 회복하고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상한이 크게 오르면, 실질적 부담은 형벌과 다름없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증명책임과 절차적 보호가 병행되어야 한다. 행정 제재의 외형을 유지한 채 사실상 형벌 수준의 부담을 지우는 구조는, 법치의 균형을 흔들 수 있다. 규제의 목적이 질서 회복이라면, 그 방식 또한 질서 안에 있어야 한다. 이미 담합 사건에서는 과징금과 형사처벌, 손해배상이 동시에 논의된다. 여기에 상한 인상과 가중 확대가 더해지면 제재는 층층이 쌓인다. 제재의 총량이 늘어나는 만큼 정의가 더 정교해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숫자는 커지는데, 법 체계의 균형은 오히려 흔들릴 수 있다.
과징금은 기업이 낸다. 그러나 비용은 기업만의 것이 아니다. 대규모 제재는 재무제표에 반영되고, 투자계획을 조정하게 만들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력과 연구개발 예산을 줄이게 한다. 가격에 전가되는 부분도 생길 것이다. 응징의 쾌감과 경제적 귀착은 서로 다른 문제다. 제재가 클수록 정의가 실현된 듯 보이지만, 그 충격파는 근로자, 협력사, 소비자에게 아주 고르게 번진다. 글로벌 경쟁이라는 현실도 무시하기 어렵다. 혹자는 다른 나라들도 높은 과징금 상한을 둔다고 말한다. 일부만 맞는 말이다. 다른 나라의 숫자들은 촘촘한 절차, 두터운 방어권 보장, 신중한 사법적 다툼의 시간과 함께 존재한다. 숫자만 가져오고 제도적 균형을 충분히 맞추지 못하면, 국내 기업은 더 큰 불확실성을 짊어지게 된다. 규제의 강도는 국제 비교에서 단순한 퍼센트 게임이 아니다.
무엇보다 아이러니한 점은, 상한이 높아진다고 해서 위반이 반드시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억지력은 ‘얼마나 세게 때리느냐’보다 ‘얼마나 예외 없이 잡아내느냐’에서 나온다. 적발 가능성이 낮다면, 상한이 아무리 높아도 계산은 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집행이 일관되고 예측 가능하다면, 굳이 숫자를 과시하지 않아도 규범은 작동한다.
숫자를 키우는 일은 비교적 쉽다. 정치적 결단과 여론의 지지가 있으면 된다. 그러나 그 숫자가 기업의 투자전략, 혁신의지, 시장구조에 어떤 파장을 남길지 계산하는 일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규제는 단호함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지속가능성은 정교함에서 나온다. 공정질서는 위협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명확한 기준, 일관된 집행, 그리고 비례성을 갖춘 제재가 맞물릴 때 비로소 시장은 규범을 신뢰한다. 과징금 상한 인상은 강한 신호일 수 있다. 그러나 신호가 소음이 되지 않으려면, 숫자보다 먼저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숫자는 잠깐 박수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균형만이 시장을 오래 지탱한다.
매일경제 로펌 리포트 [이창훈의 경쟁법인사이트]에서는 세종의 경영위원이자 공정거래그룹 팀장을 맡고 있는 이창훈 변호사가 경쟁법을 둘러싼 여러 법적 이슈들을 다룹니다. 국내외 중요 공정거래 사건들을 주도하면서 ‘상어(shark)’ 같은 집요함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한국경쟁법학회와 한국경쟁포럼 이사, 서울대 경쟁법센터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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