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렬의 화학 생활] 전환 효소 억제로 질환 치료 가능… 성기능 저하 부작용 우려
머리털이 빠지고 전립선이 붓는 원흉은 DHT(Dihydrotestosterone)라는 분자다. 테스토스테론에 수소 원자 2개가 더 붙은 호르몬으로, 남성의 일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태아 때는 생식기가 제 형태를 갖추는 데 기여한다. 사춘기에는 수염, 음모, 겨드랑이 털이 생기고 목소리가 굵어지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성인기에는 전립선에 강하게 작용해 정액의 구성성분이 분비되게 한다.
수염은 만들고 머리카락은 앗아가
남성 몸속 테스토스테론 중 약 10%가 전립선 세포에서 5α-환원효소에 의해 DHT로 전환된다. DHT는 전립선 기질세포와 상피세포 속 안드로겐 수용체에 결합해 세포 성장과 증식을 촉진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어난다는 것이다. 전립선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지나치게 커지면 요도를 압박하고 방광에서 소변이 흘러나오는 것을 방해한다.
테스토스테론을 DHT로 바꾸는 5α-환원효소의 작용을 막으면 전립선이 커지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전립선비대증 치료제와 탈모 치료제의 공통 원리다. 피나스테리드, 두타스테리드 같은 약물을 사용하면 전립선과 두피의 DHT 생성이 차단된다. 얼핏 생각하면 일석삼조다. 더 많은 테스토스테론이 남아 있게 되고, 전립선 비대증을 예방할 수 있으며, 소중한 모발까지 지킬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다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이 약은 일부 남성에게서 성욕 감퇴, 발기부전, 정액량 감소 등을 유발하고 그 결과 우울감과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머리털이냐, 남성성이냐.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잔인한 순간을 맞을 수 있다.
에스트로겐은 탈모 억제탈모는 여성에게도 나타난다. 여성은 폐경을 전후해 탈모가 시작될 수 있다. 폐경과 함께 에스트로겐이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이다. 에스트로겐은 안드로겐 수용체 주변에서 DHT 결합을 방해한다. 가임기 여성에게 탈모가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다. 폐경 이후 에스트로겐 수치가 크게 줄면 DHT의 상대적인 양이 늘고, 이것이 모낭의 안드로겐 수용체와 결합해 탈모를 유발할 수 있다.여성은 출산 후 심한 탈모를 겪기도 한다. 임신 중에는 여성호르몬 수치가 아주 높아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빠지는 과정 자체가 멈춘다. 출산 후 여성호르몬이 줄면서 정상적인 모발 성장과 쇠퇴 과정이 시작되면 그동안 빠지지 않았던 머리카락이 한번에 다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이때는 모낭 손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영양만 잘 공급하면 머리카락이 다시 잘 자란다.
여성 탈모의 원인은 호르몬 외에도 더 있다. 가임기 여성은 생리로 만성적 철분 손실이 발생한다. 철분은 모낭 세포를 비롯한 체내 세포의 산소 운반과 에너지 대사에 반드시 필요하다. 철분이 부족하면 모낭에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모발 성장기가 단축되고 탈모가 생길 수 있다. 또 머리카락 탈색이나 염색 과정에서 약제의 암모니아, 과산화수소 등 화학 물질이 모낭 세포를 손상시켜 모낭의 사멸을 유도할 수도 있다. 머리카락을 지속적으로 강하게 잡아당겨 묶는 습관이 견인성 탈모를 유발하기도 한다.
꼭 기억할 것은 한번 사멸한 모낭 세포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낭을 지키려면 두피에 지나친 자극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광렬 교수는… KAIST 화학과 학사, 일리노이 주립대 화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3년부터 고려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게으른 자를 위한 수상한 화학책’ ‘초등일타과학’ ‘사춘기는 처음이라’ 등이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47호에 실렸습니다〉이광렬 고려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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