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극장 개봉한 영화 ‘토이 스토리’ 세계관에서 어린이의 즐거움을 독차지하기 위한 장난감의 경쟁자는 장난감뿐이었다. 적어도 7년 전 네 번째 속편이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모든 이야기는 장난감끼리의 문제였다.
그런데 30년 넘게 세월이 흐르니 장난감 세상의 이런 당연한 규칙은 옛말이 됐다. 이제 아이들은 장난감 상자를 꺼내는 대신 스마트폰, 태블릿PC의 스크린을 들여다보게 됐기 때문이다.
오는 17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토이 스토리 5’의 상상력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어린이 보니가 어린이용 스마트 태블릿 릴리패드를 선물 받은 후 뒷방 신세가 된 왕년의 주인공 제시와 우디, 버즈 등 장난감들이 위기를 헤쳐 나가는 이야기다. 디지털 스마트 기기라는 적을 맞닥뜨린 장난감의 눈물겨운 생존기인 셈.
8일 화상 간담회로 만난 맥케나 해리스 감독은 “오늘날 어린이들이 어떤 현실을 살아가는가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영화”라 소개했다.
‘토이 스토리 5’는 최근 수년간 오리지널 신작들의 잇따른 흥행 부진으로 명성에 금이 간 디즈니·픽사를 구원할 ‘검증된 히트작’이다. 첫 편이 글로벌 박스오피스에서 3억750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3편과 4편은 1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냈을 만큼 ‘토이 스토리’가 영화사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시리즈 중 하나로 손꼽힌다는 점에서다.
이번 작품에선 톰 행크스(우디), 팀 앨런(버즈), 제시(조앤 쿠삭) 등 원조 흥행 주역들이 다시 한번 뭉쳤고,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할리우드에서 주목받은 한국계 배우 그레타 리가 메인 빌런인 릴리패드 목소리를 연기했다.
이번 작품은 ‘토이 스토리’ 세계관에서 가장 커다란 변화를 다룬다. 1편을 보며 자란 어린이들이 부모 세대가 됐고, 이들의 자녀는 장난감을 쥐여주기 보단 스마트 기기의 화면을 틀어줘야 떼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장난감의 존재 가치를 묻는다는 점은 생성형 인공지능(AI)에 지성을 추월당할 위기에 직면한 인류의 불안과 겹친다. 해리스 감독은 “시대가 바뀔수록 아이들이 더 빠른 나이에 장난감을 등지고 스크린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탐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릴리패드를 맡은 리가 소개한 영화에 나오는 한적한 동네의 모습은 실제 현실을 그대로 비춘다. 리는 “장난감들이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보는 동네는 마치 아포칼립스(종말) 같다”며 “각자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화면을 들여다보는데, 오늘날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도 아이를 둘 키우는데 스마트기기 문제는 참 복잡하다”며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가꿔갈 것인가, 어른은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영화는 장난감에서 디지털 전자기기로 ‘어린이 유희’의 헤게모니가 넘어가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해리스 감독은 “‘무조건 기계는 나쁘고 전통적인 장난감 놀이가 좋다’는 식의 접근은 현실적이지 않기에 하지 않았다”며 “새로 등장하는 릴리패드 캐릭터 역시 보니가 잘 자라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린이가 상상력을 발휘해 놀이를 즐기려는 욕구는 시대 불변의 요소”라며 “기술의 발전과 장난감 간의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시대 변화를 긍정하면서도 옛 향수를 불러일으킬 요소도 충분히 마련했다. ‘원조 리더’이자 늘 버즈와 티격태격하는 우디가 대표적이다. 30여년의 세월을 반영하듯 정수리가 벗겨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톰 행크스는 “그간 우디는 많은 일을 겪었고, 유기물로 만들어진 장난감인 만큼 세월의 흔적도 보인다”면서 “하지만 장난감의 본분인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마음만큼은 여전하다”라고 했다.
유승목 기자

2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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