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을 찾은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교장관은 ”지난 80여 년 간 구축된 국제 체제가 균열되면서 이 공백을 메울 유능한 국가들이 역할에 나설 때가 왔다”며 튀르키예가 국제 체제 개혁을 주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중견국인 한국과의 협력 의사를 강조했다.
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열린 ‘제143회 국제정책포럼’ 연사로 나선 피단 장관은 다음 달 앙카라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아시아 순방차 한국을 찾았다. 주한 튀르키예대사관, 고려대 국제대학원,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이 공동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김병기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사회자로 나섰다.
피단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이란전 등 현재 벌어지는 동시다발적 분쟁의 근본적 원인이 “국제 체제의 위기”라며 “이는 지난 80년간 구축된 수많은 국제기구와 조약, 정상회의, 협력 체제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진단했다. 특히 가자전쟁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제노사이드(학살)’로 칭하며 현 국제 체제의 결함과 이에 따른 정당성 위기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향후 핵심 과제로는 안보 위기의 지역 내 관리와 국제기구 개혁을 꼽았다. 그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5개의 상임이사국 중심인 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체제가 현 시대의 글로벌 권력 배분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동시에 중동과 아시아 등이 ‘지역적 주인의식(regional ownership)’을 갖고 내부로부터의 평화와 안정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패권국의 안보 개입을 지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중동은 오랜 기간 외부자의 개입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했으나 거듭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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