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조은아]獨 ‘스타 유튜버’의 한국 걱정

2 weeks ago 9

조은아 파리 특파원

조은아 파리 특파원
얼마 전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프랑스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한국 여성들의 ‘4B 운동’이 화제가 됐다. 이 운동은 ‘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성관계’, 4비(非)를 의미한다. 해외에서도 4B 운동은 꽤 알려져 있다. 특히 유럽에선 신기하고 놀라운 해외 토픽으로 적잖은 화제가 됐었다. 직장 내 여성 차별, 저출산 문제 등도 대화 주제에 올랐다.

최근 독일의 과학 전문 유튜브 채널 ‘쿠어츠게자흐트(Kurzgesagt)’는 ‘한국은 왜 망해가나’란 콘텐츠로 큰 주목을 받았다. 구독자가 2390만여 명에 이르는 이 채널에선 구체적 통계를 들며 한국 저출산의 심각성을 꼬집었다. 노동 인구, 병력 자원이 줄어 한국이 망하고 있단 내용이었다. 결국 한류의 중심인 청년들도 줄어 “한국 문화의 영혼이 사라질 것”이란 진단까지 내놨다. 한 유튜버의 분석일 뿐이지만 이 영상에는 6만9000건에 이르는 댓글이 달렸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사실과 별개로 ‘망해 가는 한국’의 이미지가 굳어질까 우려된다.

행복 지키는 북유럽의 육아 제도

정도 차이만 있지, 저출산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저출산 1위’를 벗어날 기미가 전혀 없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암울한 현실과 대비되는 뉴스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올해 세계 행복 국가 조사에서 핀란드(1위), 덴마크(2위), 스웨덴(4위), 노르웨이(7위) 등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는 소식이다. 공교롭게도 북유럽인들이 행복한 비결 중 하나로 ‘우수한 육아 지원 제도’가 꼽힌다.

2018년 에르나 솔베르그 당시 노르웨이 총리를 인터뷰했을 때도 같은 답을 들었다. 그는 “행복이란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이라며 “일과 가정이 균형을 이룰 때 사람들은 자기가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가족 친화 정책이란 얘기였다.

솔베르그 총리가 특히 강조했던 육아 지원 제도는 근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유연 근무제’였다. 흔히 노르웨이의 부모들은 하교하는 아이들을 데리러 오후 4시쯤 퇴근해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다시 컴퓨터를 연다고 했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필요로 할 때 당장 달려갈 수 있도록 근무를 조정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주요 노동조합들이 파업을 거의 매주 벌이고 학교가 수시로 문을 닫을 때마다 부모들은 재택근무나 휴가로 대응했다. 일하는 부모들을 도와 저출산을 해결하려면 ‘근무 혁명’이 필수적인 것이다.韓 대선 공약은 재정 지원 중심

그런데도 한국의 대통령 선거 후보들 사이에서 유연 근무제 이야기는 잘 들리질 않는다. 아동수당, 육아휴직 급여 등 재정적 지원을 늘리는 주장이 주를 이룬다. 금전 지원도 육아에 도움은 된다. 하지만 매일 출퇴근과 육아에 허덕이는 부모들은 근무 방식의 혁명적 변화를 더 원한다.

유연 근무제로 노동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기업들의 고민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미 7년 전 만났던 노르웨이 총리마저도 ‘유연 근무제로 오히려 노동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자부했다. 기업과 정부, 노조가 생산성 하락만 걱정하기보다 새로운 시도로 생산성을 높일 방법을 연구하고 대화를 서둘러야 할 때다.

저출산 대책이 핵심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채 계속 겉돌기만 한다면 독일 유튜버의 지적처럼 한국은 경제, 안보, 문화 등 다중적인 소멸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K팝과 K드라마에 열광하던 유럽의 팬들은 이제 한국을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다.

특파원 칼럼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 정기범의 본 아페티

    정기범의 본 아페티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