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재무팀 출신 A씨는 건축자재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뒤 누나와 고깃집을 차렸다. 월 수익 600만원 이상을 기대했지만 대출 이자와 임차료, 인건비를 지급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거나 적자인 달이 대부분이다. A씨는 “남의 돈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골목상권이 식어가고 있다.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데 인건비와 각종 부대비용이 치솟으며 자영업자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30일 한국경제신문이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 통계를 분석한 결과 식당 카페 편의점 마트 등 생활밀접 업종의 지난해 개업률은 8.1%로 2017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개업률은 영업 중인 전체 사업체 대비 새로 문을 연 사업체의 비율을 뜻한다.
지난해 새로 문을 연 점포는 5만1251개로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2023년(8만4380개)과 비교해 2년 만에 3만3000여 개(39.2%) 급감했다. 폐업한 점포는 6만5976개로 개업 점포를 크게 웃돌았다. 이에 따라 서울지역 전체 점포는 2023년 26만4967개에서 2025년 24만3677개로 2년 만에 2만 개 이상 증발했다.
지난해 폐업률은 10.4%로 2024년 11.5%에서 소폭 하락했다. 소상공인이 철거, 대출 상환 등 폐업 비용이 부담돼 버티기 운영에 들어간 영향으로 분석된다. 스크린골프연습장을 운영하는 B씨는 “폐업에만 2억원 정도가 든다”며 “적자가 나도 그냥 버티고 있다”고 했다.
창업 절벽 현상은 고용 시장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8월 기준) 고용원이 있는 전국 자영업자는 143만5000명으로 1년 전보다 5000명 감소했다.
서울 개업률 '역대 최저'…자영업자 60세 이상이 41%
은퇴 후 생계형 창업 내몰려…비용 부담에 출구전략도 '막막'
“대출 원리금 갚는 날이 다가오면 1주일 전쯤 문자가 와요. 돈을 준비하라는 거죠. 그때부터 숨이 턱 막힙니다.”
서울 동작구에서 의료기기 판매업을 하는 C씨는 배달이나 택배보다는 사업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자영업을 택했다. 하지만 매달 이자와 임차료 내는 날이 되면 사업을 접어야 할지 고민한다. 문제는 폐업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적지 않은 나이를 고려할 때 재취업도 어렵다는 것이다. C씨는 “생계유지를 위해 버티기 영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자만 떠밀리듯 자영업 전선
경기 악화로 골목상권이 식어가면서 C씨 같은 한계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있다. 30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5년 8월 기준 비임금근로자는 655만4000명으로 1년 전보다 10만3000명 줄었다. 전체 취업자 대비 비임금근로자 비중도 22.6%로 0.5%포인트 하락하며 2007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창업 절벽으로 줄어드는 자영업자 중 고령자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전체 비임금근로자 중 60세 이상 비중은 작년 8월 41.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새 8만 명 늘었다. 다른 연령대는 모두 감소했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해 10월부터 2개월 동안 자영업자 2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2025 자영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60대는 창업 이유로 ‘생계 목적’(41.5%), ‘실직·생계유지’(39.1%)를 꼽았다. 자발적 창업이 아니라 생존형 진입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출구마저 막혀 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60대 D씨는 “폐업할 때는 대출금까지 몇천만원을 한 번에 토해내야 해 빚만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회미래연구원은 “대출 일시 상환 압박과 철거비 부담이 폐업을 어렵게 한다”고 진단했다. 소상공인 안전망인 노란우산의 폐업공제금 지급액은 지난해 1조485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2021년 9040억원 대비 64.3% 급증했다.
◇호프집·치킨집부터 무너지는 골목상권
골목상권에서 가장 강하게 직격탄을 맞은 업종은 호프집과 치킨집이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호프·간이 주점의 연간 개업은 2020년 2951건에서 지난해 1525건으로 5년 만에 반토막 났다. 개업률도 같은 기간 16.1%에서 9.6%로 급락했다. 이에 서울 내 호프집은 2020년 1만8295개에서 지난해 1만5880개로 13.2% 줄었다.
경기 악화로 인한 소비 위축과 기업 회식 감소, ‘혼술’ 문화 확산 등이 맞물리면서 저녁 상권 수요가 쪼그라든 영향이다. 여기에 자영업자의 금융 부담까지 겹쳤다. 호프집을 운영하는 50대 F씨는 “배달 앱 수수료, 광고비, 배달비 등을 합치면 매출의 약 30%가 빠져나간다”며 “플랫폼 이용료가 월세만큼 나가니 벌어도 남는 게 없다. 카드론만 5000만원까지 받아봤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골목상권 위기의 원인을 단기 불황뿐 아니라 구조적 변화에서 찾고 있다. 국회미래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들이 꼽은 외부 경영 애로 사항은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위축’이 77.6%로 압도적 1위였고 ‘온라인 플랫폼 확산’(44.8%), ‘상권 경쟁력 약화’(41.8%)가 뒤를 이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내수 위축과 생활 방식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외식업을 중심으로 골목상권 전반이 위기를 겪고 있다”며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골목상권이 붕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곽용희/김영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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