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컬렉터 이봉 랑베르의 '화려한 실패', 대전 헤레디움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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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컬렉터 이봉 랑베르(Yvon Lambert). 그는 현대미술계의 거장 사이 톰블리와 다니엘 뷔렌이 유명해지기 전에 이미 그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다. 한 작가의 작품을 사랑한다면 소장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이봉 랑베르(90)는 평범한 프랑스 서민이었다. 부친은 시詩를 좋아하는 택시 기사였는데, 랑베르는 열네 살 때 빵집에서 아르바이트한 첫 월급으로 풍경화를 구입할 만큼 예술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그는 1960년대 고향 방스(Vence)와 파리에서 갤러리를 열었고, 바스키아·다니엘 뷔렌·솔 르윗·도널드 저드·칼 안드레 등의 거장들이 신인일 때 그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프랑스에 알렸다.

 예술가의 곁에서' 전시 포스터 일부. 낸 골딘이 촬영한 이봉 랑베르의 사진이다. / 사진제공. 헤레디움

'이봉 랑베르 : 예술가의 곁에서' 전시 포스터 일부. 낸 골딘이 촬영한 이봉 랑베르의 사진이다. / 사진제공. 헤레디움

2012년 랑베르는 소장하던 작품을 모두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고, 그의 컬렉션은 아비뇽에 위치한 이봉 랑베르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랑베르의 파리 갤러리 공간은 이제 데이비드 즈위너 갤러리가 사용 중이고, 그는 마레 지구에서 서점을 운영하며 여전히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우정과 사랑이 깃든 그의 컬렉션을 소개하는 전시가 현재 대전 헤레디움에서 열리고 있어 화제를 모은다. 이 전시는 헤레디움과 컬렉션 랑베르가 공동 기획한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 기념 국제 교류전이기도 하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바스키아의 작품이다. 함선재 헤레디움 관장은 이봉 랑베르와 바스키아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Jean-Michel Basquiat, Untitled, 1987, Colored pencil and graphite on paper, 56.5 x 76 cm / 사진제공. 헤레디움

Jean-Michel Basquiat, Untitled, 1987, Colored pencil and graphite on paper, 56.5 x 76 cm / 사진제공. 헤레디움

“이봉 랑베르는 딸과 함께 1982년 바스키아를 만납니다. 6년 뒤에 바스키아가 파리의 이봉 랑베르 갤러리에서 첫 전시를 하는데, 이미 그때는 바스키아가 너무 유명해진 이후였다고 해요. 이봉이 바스키아에게 전시를 못해도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바스키아는 프랑스 첫 전시는 반드시 그와 함께하겠다고 답했죠. 이에 이봉은 신작들로만 전시를 구성해줄 테니 반드시 프랑스에 와달라고 요청했고, 바스키아는 이에 따랐어요. 하지만 5개월 후 바스키아는 사망했죠. 바스키아가 문에 그려준 작품이 헤레디움에 전시되어 있어 두 사람의 우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스키아가 작업실이 없던 시절 낡은 문 위에 그린 작품에는 일상의 사물을 거침없이 예술로 전환하던 작가의 자유로운 기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라피티에서 출발한 거칠고 즉흥적인 필치 위로 그의 시그너처인 왕관과 저작권 기호가 새겨져 있다. 바스키아의 작품 옆에는 사이 톰블리의 작품이 있다. 바스키아가 그에게서 큰 영감을 받았고, 가장 좋아하는 미술가가 사이 톰블리였다는 점을 고려한 따뜻한 배치다.

Jean-Michel Basquiat, Untitled (Famous Negro Athletes),1980-81, Acrylic and ink on door, 203 x 61 x 4 cm / 사진제공. 헤레디움

Jean-Michel Basquiat, Untitled (Famous Negro Athletes),1980-81, Acrylic and ink on door, 203 x 61 x 4 cm / 사진제공. 헤레디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다니엘 뷔렌의 작품도 몇 점 전시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8.7cm 간격으로 스트라이프 문양을 연속하는 조형이 특징인데, 이번 전시에서는 흰색과 검은색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그리스 대리석 조각도 만날 수 있다. 뷔렌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랑베르에게 선물한 특별한 작품이다. 작가가 작품을 선물했다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우정이 대단히 특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랑베르의 갤러리 첫 개관 전시가 다니엘 뷔렌 개인전이었는데, 단 한 점도 팔지 못했다고 한다.

Daniel Buren, Anthracite élégant cuir  Blanc Thasos (Grèce) - 9 lattes, 2019, Work located Anthracite, marble, 2175 x 783 x 3 cm / 사진제공. 헤레디움

Daniel Buren, Anthracite élégant cuir Blanc Thasos (Grèce) - 9 lattes, 2019, Work located Anthracite, marble, 2175 x 783 x 3 cm / 사진제공. 헤레디움

1층에서 눈에 띄는, 선풍기를 이용한 설치미술은 리투아니아 작가 지비나스 켐피나스(Zivinas Kempinas)의 작품이다. 카세트테이프 필름을 선풍기 두 대로 둥글게 돌리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보이게 하기 위한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의 재료이기에 사실상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작품인 셈이다.

Žilvinas Kempinas, Lemniscate, 2007, Fans and magnetic tape, dimensions variable / 사진제공. 헤레디움

Žilvinas Kempinas, Lemniscate, 2007, Fans and magnetic tape, dimensions variable / 사진제공. 헤레디움

“두 개의 건축 모형도 의미가 있습니다. 왼쪽은 장-미셀 오토니엘, 오른쪽은 로버트 베리가 만든 작품입니다. 이봉 랑베르는 고향 방스에 예술가들이 만든 성당을 설치하자고 제안했어요. 이를 위해 여러 친구에게 건축 디자인을 요청했죠.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결국 무산돼 이렇게 모형으로만 만날 수 있습니다.”

함선재 관장은 방스는 마티스와 피카소가 활동하던 아름다운 남부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이봉 랑베르의 예술적 감각은 어느 정도 고향에서 발휘되었음이 분명하다.

1층의 가장 안쪽 공간에는 요셉 보이스, 크리스티안 볼탕스키, 온 카와라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요셉 보이스의 작품은 사운드 설치작이다. 아프리카어로 “네, 네, 네,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가 반복적으로 울린다. 전쟁 당시 공군으로 참전한 요셉 보이스가 비행기에서 추락했을 때, 원시 부족이 그를 주술적으로 치료해준 기억으로 만든 작품이다. 볼탕스키의 작품은 스위스 신문 부고장의 얼굴 사진들을 이용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온 카와라와 이봉 랑베르의 우정도 특별했어요. 온 카와라는 생전에 30년 동안 매일 아침 ‘나는 살아 있다’는 전보를 이봉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이메일로 바꾸긴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날짜를 매일 작품으로 만들었어요. 에디션은 3개인데, 때로는 1개만 만들거나 작품을 만들지 않은 날도 있었어요. 전시된 작품의 날짜는 이봉이 특별히 주문한 에디션인데, 그 의미는 비밀이라고 합니다.(웃음)”

On Kawara, OCT. 12, 1988 Wednesday From Today, 1966–2013, Acrylic on canvas and handmade cardboard box with newspaper clipping, 20.5 x 25.5 cm / 사진제공. 헤레디움

On Kawara, OCT. 12, 1988 Wednesday From Today, 1966–2013, Acrylic on canvas and handmade cardboard box with newspaper clipping, 20.5 x 25.5 cm / 사진제공. 헤레디움

아름다운 나선형 계단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품이 도널드 저드의 드로잉과 조각이다. 조각은 이곳에 전시한 작품 중에서 가장 고가일 것이 분명하다. 도널드 저드의 작품은 바닥에 놓으면 스툴, 책을 넣으면 책장으로 변신한다.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 작품을 어떻게 놓을 것인가의 개념을 가장 먼저 고민한 작가인 만큼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드로잉 여섯 점은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그 옆으로는 낸 골딘의 사진 작품 10점이 우리를 반긴다. 미국 여성 사진가 낸 골딘은 랑베르가 특히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전시 사진 중 한 장은 이봉 랑베르의 초상이다. 랑베르는 평소 자신의 얼굴을 노출하는 것을 꺼렸지만, 골딘이 촬영해준 사진을 전시하고 미술관 포스터에 쓰는 것은 기꺼이 허락했다. 낸 골딘은 폭력, 마약, 동성애를 주로 소재로 삼는 문제적 작가다. 랑베르는 딸이 있지만, 뒤늦게 커밍아웃하고 퀴어의 삶을 살고 있기에 두 사람은 소수자의 삶을 나누는 심리적 동료애가 깊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술가의 곁에서' 2층 전경 / 사진제공. 헤레디움

전시 '이봉 랑베르 : 예술가의 곁에서' 2층 전경 / 사진제공. 헤레디움

2층에서는 솔 르윗의 작품 여덟 점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아이디어가 예술이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지시문만 있으면 누구나 제작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두 점의 그래픽 작품은 그간 공개되지 않던 작품이라니 더욱 시선이 간다. 솔 르윗에게 작품의 본질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아이디어와 규칙에 있었다.

솔 르윗의 나무 조각 양쪽으로는 미국 작가 로렌스 와이너의 글자 작품 두 점이 각각 설치돼 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지만,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미술관 외부에 있다. 로렌스 와이너의 작품이 미술관 바로 앞에도 거대한 크기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RUPTURED(파열된)”라고 크게 적힌 이 작품은 포토 스폿으로도 인기가 높다. 로렌스 와이너는 글자와 이 글자 작품을 설치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전시하고 판매한 개념미술 작가다. 그의 작품을 소장한다는 것은 문구를 지웠다가 필요할 때 다시 설치할 수 있다는 의미여서 더욱 흥미롭다. 서울의 리움미술관 로비와 M2 건물 외벽에도 로렌스 와이너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Lawrence Weiner, RUPTURED, 1969, Language and the materials referred to, dimensions variable / 사진제공. 헤레디움

Lawrence Weiner, RUPTURED, 1969, Language and the materials referred to, dimensions variable / 사진제공. 헤레디움

이봉 랑베르의 컬렉션을 살펴보면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장소 특정적 미술, 사회 비판적 미술 등 20세기부터 지금까지 현대미술사를 이끄는 혁신적 작품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솔 르윗, 다니엘 뷔렌, 온 카와라 같은 작가를 지지하고 그들의 작품을 컬렉션한다는 것은 ‘화려한 실패’라고까지 불렸다. 랑베르가 관심을 갖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들 거장의 발견은 한결 늦어졌을 것이다. 현대미술의 역사와 함께한 그의 대표 컬렉션은 대전 헤레디움에서 7월 26일까지 만날 수 있다. 파리 데이비드 즈위너 갤러리에서도 오는 8월 이봉 랑베르의 컬렉션을 전시할 예정이다.

대전=이소영 프리랜서 미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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