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하늘이 돕는건가 싶었어요. '진짜야?'하고 김칫국부터 마셨습니다."
배우 조정석은 신작 영화 '좀비딸' 개봉을 앞두고 이같이 말하며 극장가에 불어온 훈풍을 반겼다. '좀비딸'은 오는 7월 30일, 문화가 있는 날인 마지막주 수요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타이밍 좋게 정부의 영화 관람 할인 쿠폰 지원 정책까지 더해져 흥행 시너지가 예상된다. 조정석은 "극장가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시작이 좋다"고 설렘을 전했다.
정부가 극장가를 살리기 위해 271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투입하고, 영화관 입장권 6000원 할인권 450만 장을 배포하면서 업계 전반이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25일 오전 10시부터 영화 관람 할인권 배포를 시작했다. 전국 영화관에서 선착순으로 발급되는 만큼, 멀티플렉스 영화관 예매 사이트는 사실상 '전쟁터'가 됐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씨네큐브 등 주요 극장 체인 홈페이지는 접속자가 폭주하면서 일제히 마비되거나 접속이 지연됐다.
오후 2시 기준, 일부 사이트에서는 대기 인원이 25만 명을 넘겼고, 예상 대기시간이 23시간 이상이라는 안내 문구가 뜨기도 했다. 오후 3시 무렵에는 대기 인원이 무려 47만 명을 돌파했다.
할인권은 영화관 홈페이지 및 앱에서 발급할 수 있으며, 9월 2일까지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문화가 있는 날' 할인과도 중복으로 적용돼,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는 1000원에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된다.
영화를 단 1000원에 관람할 수 있다는 소식에 대중의 관심이 급격히 쏠렸고, 관객들은 멀티플렉스 극장별로 2매씩 제공되는 할인권을 받기 위해 일제히 사이트에 접속했다. 이에 따라 각 예매 사이트에 순간적으로 접속자가 몰리면서 일시적인 마비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할인권이 발행되는 타이밍은 극장가의 전통적인 성수기인 '7말8초'(7월 말~8월 초). 텐트폴 작품들이 잇따라 개봉하거나 관객맞이에 나서는 시기다. 올해 들어 관객 수가 기대에 못 미치며 "코로나 시절보다 더 어렵다"는 반응까지 나오는 가운데, 극장가 분위기를 반전시킬 만한 대작들이 출격했다.
600억 원대 대작 '전지적 독자 시점'을 비롯해 마블의 '판타스틱4', 브래드 피트 주연의 'F1 더 무비',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등 할리우드 작품들이 상영 중이다. 여기에 한국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와 인기 IP를 실사화한 '좀비딸'까지 합세하며 여름 극장가에 힘을 보탠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다가오는 여름방학과 휴가 기간을 맞이해 영화관 입장권 할인 지원으로 영화를 즐기고, 이를 통해 영화관도 활기를 되찾기를 기대한다"며 "문체부는 앞으로도 현장의 수요를 반영해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산업 활성화를 지원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전했다.
황재현 CJ CGV 전략지원 담당은 "영화를 1000원에 볼 수 있다는 소식이 관심을 더욱 끌어올리며 접속자가 한꺼번에 몰렸다"며 "이번 주말 개봉한 작품들 가운데 볼만한 콘텐츠가 많았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 정도의 동시접속량은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할인은 가뭄 속 단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영화산업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황인데, 이번 쿠폰이 소비 활성화와 민생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관객 유입이 늘어나면서 매점 매출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황 담당은 "민생 회복 지원금과 할인 쿠폰이 관람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췄고, 극장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팝콘이나 음료 같은 부대 소비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며 "극장가의 활력은 결국 관객, 고객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덧붙였다.
한 영화계 관계자도 "영화를 저렴하게 봤기 때문에 예전엔 비싸게 느껴졌던 음료나 팝콘, 굿즈에도 지갑을 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긍정적인 소비 반응을 점쳤다.
롯데시네마는 '극장아, 여름을 부탁해!' 이벤트 기간 중 매점 프로모션, 굿즈 이벤트 등도 마련했다. 이신영 롯데컬처웍스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여름 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아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한 이벤트"라며 "이번 기회를 통해 관객들이 다시금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느끼시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이벤트가 흥행한 것이 오히려 영화 관람료가 너무 비싸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황재현 담당은 "상시 할인은 큰 의미가 없다. 볼만한 영화가 나왔을 때 할인까지 겹치니 관객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라며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 그 니즈가 다시 확인된 셈"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극장을 찾는 핵심은 콘텐츠에 있다. 관객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선 양질의 콘텐츠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영화계 관계자 역시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을 때 영화가 좋거나, 팝콘이 맛있거나, 좌석이 편하다는 경험이 쌓여야 관객이 극장을 다시 찾는다"며 "이번 이벤트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 홍보사 로스크 김태주 대표는 "이번 이벤트가 끝나고 나면 오히려 '티켓값이 더 비싸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며 "정부와 극장, 영화계가 함께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할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통신사나 헌혈 할인처럼 일상에서도 이어질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마련한 '반값 쿠폰'이 불황과 무더위를 모두 날려줄 '마중물'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극장가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