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생각보다 가깝고 오래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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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생각보다 가깝고 오래된 친구

2023년 여름, 한국에 부임하기에 앞서 전임 대사들을 만나 경험담을 청했다. 그중 듣게 된 프랑스다운 은유적 표현에 의하면, 한국 생활은 카트르 카르(quatre-quarts)처럼 달콤할 거라고 했다. 카트르 카르는 밀가루, 버터, 계란, 설탕 등 네 가지 재료를 4분의 1씩 같은 양을 넣어 만든 전형적인 프랑스 파운드케이크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 영사 업무를 골고루 섭렵하게 될 것이라는 비유적 설명이었다. 그 표현은 참으로 절묘했다. 주한 프랑스대사직은 네 가지 분야를 두루 살피며, 소중한 보물처럼 빛나는 양국 공동의 성과를 내고 계획을 추진하는 자리다.

마침 2026년은 한·프랑스 수교 140주년이 되는 해다. 프랑스와 한국을 이어주는 여러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기다. 두 나라는 1886년 6월 4일 우호통상항해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따라서 내년은 우리가 함께 이뤄온 소중한 성과를 자축하고,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협력의 길을 모색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해가 될 것이다.

지난 주말엔 경북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잘 마무리됐다. 나는 인도·태평양에 속한 이웃 나라 대사로서 이번 회의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 유럽대륙 지도에 육각형 모양으로 자리 잡은 프랑스 국토만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방금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사실 프랑스 영토는 유럽대륙에만 있지 않다. 2024년 파리올림픽 때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타히티에서 펼쳐진 서핑 경기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바로 이해할 것이다. 프랑스가 누벨칼레도니와 왈리스푸투나 제도를 포함하는 태평양 국가라는 사실을. 50만 명의 프랑스 국민이 거주하고 있는 이 지역은 옥빛 바다, 산호초, 끝없는 백사장 등 천혜의 자연을 자랑한다. 지역민들은 한국과 교역, 기후, 안보 이슈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프랑스는 강대국 간 경쟁이 휘몰아치는 방대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익과 주권뿐만 아니라 진영논리 거부, 법치와 특히 해양권 존중, 기후변화 대응 및 지속 가능 개발 원칙을 수호하고 있다. 이에 한국과 프랑스는 인도태평양대화를 발족해 정보 분석을 공유하고, 보건 및 원시림 보호를 비롯한 협력국 수혜 사업을 양국 공동 행동의 주요 축으로 삼으며 힘을 모으고 있다.

폴리네시아를 지역구로 둔 하원의원이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갔다. 일정 말미에 감사의 뜻과 함께 타히티 전통 송별 예법에 따라 아름다운 조개 목걸이를 나에게 선물했다. 섬세한 조개 하나하나를 보노라니 한국과 프랑스가 공유하는 태평양이 얼마나 아름다우면서도 연약한지, 이를 함께 보호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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