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눈길을 끈 것은 팬들의 흥미로운 반응이었다. 과거에는 팬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리액션 비디오를 만드는 방식 등으로 콘텐츠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최근에는 팬들이 직접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새로운 형식의 팬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오징어 게임’ 시즌3의 결말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가진 팬들이 AI를 활용해 직접 다른 버전의 엔딩을 만들어내거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실제 사람이었다면 어떠했을지 AI로 실사화 모습을 제작하는 식이다. 팬덤 문화의 지평이 기술을 통해 확장되는 순간을 목격한 셈이다. 이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한국이 가진 문화적 힘과 기술력이 만나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하는 상징적인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정보기술(IT) 강국, 반도체와 스마트폰의 나라로 알려진 한국이 이제는 문화의 힘을 더해 세계를 향해 비상하고 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매력을 해외에 알려온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러한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늘 ‘어떻게 하면 한국의 진짜 매력을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해왔다. 문화는 단순히 설명하는 것을 넘어 직접 체험하고 참여할 때 비로소 그 깊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AI 기술은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줬다.그 가능성을 최근 제주도에서 열린 한 특별한 행사에서 직접 확인했다. 유네스코 동아시아 지역사무소 등이 주최한 ‘2025 제주 AI국제필름페스티벌’에는 11개국에서 온 83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AI를 활용해 제주의 고유한 문화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학생들이 자신의 문화적 배경과 제주의 전통을 스스럼없이 융합해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브라질 출신 학생은 자국의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과 성산일출봉을 한데 엮어냈고, 멕시코 학생들은 아스텍 피라미드와 제주의 돌하르방을 조화롭게 배치해 두 문화의 흥미로운 공존을 보여줬다. 이는 한국 문화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도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훌륭한 아이디어였다.
“AI 덕분에 상상했던 모든 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 해방감을 느꼈다”는 한 학생의 소감은 이 프로젝트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었다. 물론 AI에 자신이 원하는 제주의 정확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더 구체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행사를 통해 AI가 단순한 기술 도구를 넘어 문화 간 소통을 위한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제주 방언이나 설화처럼 외국인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문화 요소들이 AI를 통해 시각적으로 재탄생하자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해녀의 강인함, 감귤의 새콤달콤함, 한라산의 웅장함이 각국 학생들의 문화적 프리즘을 통해 새롭게 해석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이제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비단 최첨단 기술만이 아닐 것이다. 기술과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능력이야말로,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만의 독보적인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기술을 수출하는 나라에서 ‘기술로 문화를 전파하는 나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음식을 찾는 등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 지금, AI라는 새로운 도구가 더해진다면 그 파급력은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처럼 흥미진진한 시대를 선사한 적은 없었다. AI와 지역문화의 결합이 가져올 무한한 가능성이 우리 모두가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제주에서 시작된 이 의미 있는 실험이 전국으로,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돼 기술과 문화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한국의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카를로스 고리토 브라질 출신 방송인·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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