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 이후 더 이상 생명이 자라나지 않는 황량한 땅. 그곳에서도 누군가는 농담을 건네고 노래를 부르며 무대를 만든다. 래빗홀씨어터가 제작하는 연극 '호기우타'(寿歌)가 오는 7월 4일부터 1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서울문화재단 2026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 프로젝트인 이번 작품은 지난해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제12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을 통해 먼저 소개돼 호평을 받았다. 이에 따라 올 여름 정식 무대로 확장되어 관객을 찾는다.
작품은 일본 현대희곡의 거장 기타무라 소가 1972년 집필했다.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유랑극단 출신의 게사쿠와 교코, 그리고 원본만 있으면 무엇이든 복제해내는 수수께끼의 인물 야스오가 리어카를 끌고 길 위를 떠도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들은 관객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공연을 멈추지 않는다.
50여년 전에 쓰인 희곡이지만 오늘날 시대상에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옛날엔 상상에 의존했던 재난의 풍경이 이젠 현실의 불안과 맞닿아 있어서다. 국제 분쟁과 핵 위협, 심화되는 기후위기와 생태계 붕괴는 작품 속 세계를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로 관객을 끌어다 놓는다.
작품 속 인물들은 숨 막히는 폭염을 견디다 갑작스러운 눈보라와 빙하기를 마주한다. 황폐해진 풍경은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을 변화시키는 인류세 시대의 위기를 떠올리게 하며, 관객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그러나 호기우타는 종말 서사에만 목매지 않는다. 세계는 무너졌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사랑하며 노래한다. 게사쿠와 교코는 끊임없이 만담을 주고받고, 야스오는 엉뚱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웃음을 만들어낸다. 세 인물은 무대 위에서 끝까지 열연한다.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절망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힘에 대해서도 곱씹어 보게 하는 대목이다.
연출은 2020년 제11회 두산연강예술상 공연부문 수상자인 윤혜숙이 맡았다. '은의 혀', '정희정', '마른대지',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 '세컨드 찬스' 등에서 사회와 공동체의 균열을 섬세하게 탐구해온 윤혜숙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핵전쟁과 기후위기라는 원작의 문제의식을 동시대의 현실과 연결 지었다.
출연진은 지난해 낭독공연에 참여했던 배우들 그대로다. 게사쿠 역의 이경민, 교코 역의 정다연, 야스오 역의 우범진은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더욱 밀도 있는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세 배우가 만들어내는 부조리한 유머와 서정적인 정서는 작품의 매력을 한층 선명하게 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극 '호기우타'는 7월 4일부터 1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되며, 전 회차 한글자막해설이 제공된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2 weeks ago
6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