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분야의 세계적 이론연구소들은 연구자들을 4~6개월씩 상주시켜 연구합니다. 난제는 장기간 토론하고 협업하는 과정에서 풀리기 때문입니다. 한국고등과학원(KIAS)은 이런 협업이 가능한 세계적 연구 허브로 거듭나겠습니다.”
노태원 KIAS 원장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초과학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조건으로 ‘장기 몰입형 연구 환경’을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KIAS는 국내 최초의 순수 이론 기초과학 연구기관이다. 일반 대학과 달리 교수들이 학부생과 대학원생 교육 부담 없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된다.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도 이곳에서 2021년부터 석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석학과 장기 몰입하는 환경 구축”
1996년 설립돼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KIAS는 올해 하반기 서울 마곡에 연구 허브 ‘무주·쎈 수학물리연구소’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몰입형 연구 환경’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연구 허브 구축은 교육 출판 기업 좋은책신사고 창업주인 홍범준 대표의 사옥 무상 임대를 통해 이뤄진다. 연면적 약 1626㎡ 규모로, 연구실·세미나실 등이 들어선다.
노 원장은 “한국은 해외 석학이 방문하더라도 장기 체류할 공간이 없어 단기 강연만 하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마곡 연구 허브를 통해 KIAS도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 영국 아이작 뉴턴 수리과학연구소(INI)처럼 기초과학 분야 연구를 세계적으로 선도하는 기관으로 거듭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민간 기부가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원장은 “정부 재원만으로는 장기·고위험 연구를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IAS 등도 운영 비용의 상당 부분을 민간 기부에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연구 양적 성장 넘어 질적 도약해야”
노 원장은 한국 기초과학의 목표와 역할이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패스트 팔로어’로 따라갔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했다. 논문 수와 연구 인프라 측면에서 한국 기초과학이 세계 10위권 수준에 진입한 만큼, 양적 성장을 넘어 창의성과 깊이를 갖춘 연구로 질적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이러한 환경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로 ‘인내 자본’을 꼽았다.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실패를 감수하면서도 장기적으로 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노 원장은 과학과 기술의 차이를 언급하며 “기술은 활용 가능성이 중요하지만 과학은 새로운 발견 자체가 핵심”이라며 “단기 성과 중심의 평가를 넘어 오래 인내하고 실패를 감수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 과학기술 혁신의 출발점이 된 전자의 발견 사례도 소개했다. 노 원장은 “1897년 영국의 물리학자 JJ 톰슨이 전자를 발견했을 때 활용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됐지만 이후 반도체와 전자기기 등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됐다”며 “이처럼 기초과학은 장기적으로 산업과 사회의 질적 전환을 이끄는 출발점이 된다”고 했다.
◇“AI 시대에 기초과학 역할 커진다”
노 원장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기초과학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봤다. 그는 “AI의 작동 원리와 한계를 규명하는 문제는 결국 수학·물리·계산과학의 영역”이라며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할루시네이션(환각·AI가 잘못된 정보를 사실처럼 만들어내는 현상)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풀기 위해서는 기초과학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초과학 진로를 고민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다른 길의 가치’를 강조했다. 노 원장은 “남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과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경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기초과학은 그 새로운 길에서 얻는 희열을 느낄 수 있는 분야”라고 했다. 이어 “좋은 연구는 호기심에서 시작해 끈기로 완성된다”며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과 거인 같은 끈기를 지닌 인재가 기초과학계에 많이 뛰어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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