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저머니’는 완벽한 품질, 안전성, 그리고 신뢰를 상징하는 독일산 프리미엄 브랜드를 의미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조업 최강국이자 히든 챔피언(특정 분야에서 최고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며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춘 우량 강소기업)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가 독일이었다.
자동차 분야의 벤츠, 엔지니어링 분야의 지멘스, 금융 및 보험 서비스 분야의 알리안츠, 화학 및 소재 분야의 바스프(BASF), 아스피린으로 대표되는 바이엘 등, 각 분야에서 세계를 주름잡는 브랜드가 독일 기업이었고, 이들 기업은 첨단 분야를 선점하며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집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지금 독일 주요 기업들의 상황이 만만치 않다. 히든 챔피언들은 글로벌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심각한 구조적 변화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26년 독일 논픽션상’을 수상하며 주요 서점이 집계한 베스트셀러 목록 최상위권에 오른 <300명의 남자들(Dreihundert Männer)>은 한때 ‘독일 주식회사’라고 불리며 세계 경제를 주름잡던 독일 기업 연합이 언제 탄생해서 어떻게 전성기를 누렸고, 그리고 왜 지금의 위기에 처하게 됐는지를 냉철하게 분석한 책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주요 기업들의 탄생과 성장을 다룬 150년간의 흥미로운 경제사로, 독일이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숨겨진 집단 네트워크의 형성과 붕괴의 흥미로운 기록이 소개된다. 언론인 출신으로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등, 전 세계 주요 매체에 정기적으로 글을 싣고 있는 콘스탄틴 리히터는 1870~1914년 창업기, 1914~1945년 전쟁과 혼란기, 그리고 1945~2000년 부흥기로 나눠, 독일 대표 기업들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그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가며 소개한다.
“300명의 독일 남자들이 유럽의 경제적 운명을 결정지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이끌었던 정치인이자 사업가였던 발터 라테나우는 알리안츠, 크루프, 지멘스 같은 기업의 부상을 통해 형성된 창업자, 은행가, 산업계 거물, 로비스트들이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1850년대 중반에 시작해 1873년 주식 시장 붕괴로 끝난 소위 ‘창업자 시대’에 수백 개의 회사가 설립됐고, 그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세워나갔다. 그들은 긴밀하게 서로 알고 있었고, 정기적으로 소통했으며, 자신들끼리 거래하며 몸집을 불렸다. 1990년대까지 소위 ‘독일 주식회사’로 알려진 이 네트워크는 1990년대까지 서독의 정치와 기업 문화를 주도했다.
<300명의 남자들>은 독일 경제의 실력자와 거물들의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소개한다. 19세기 후반 에센의 알프레드 크루프와 베를린의 베르너 지멘스를 시작으로, 레버쿠젠의 바이엘, 프랑크푸르트의 회히스트, 루트비히스하펜의 바스프, 다임러, 알리안츠, 만네스만 등의 기업이 잇따라 등장했다.
이들 기업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까지 견뎌냈다. 대규모 공장 제조 시설로 수천 명의 직원을 고용하며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 그 영광은 사라지고 독일 경제에는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책은 냉철하게 그 원인도 함께 분석해본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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