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달러에 트럼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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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4년 미 정부는 무기 제조에 쓸 금속이 부족해지자 동전을 대신할 5센트짜리 지폐를 만들기로 했다. 그 지폐에 들어갈 인물로 남북전쟁의 영웅 윌리엄 클라크가 정해졌지만 이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그와 성이 같았던 당시 재무부 화폐국장이 지폐에 자기 얼굴을 새겨서 ‘셀프 발행’을 한 것이다. “나라의 품위에 먹칠을 했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고, 의회는 재발을 막겠다며 곧바로 입법에 나섰다. 미국 지폐엔 오직 사망한 인물의 얼굴만 넣을 수 있다고 법에 못을 박았다.

▷이후 160여 년간 지켜져 온 원칙이 최근 흔들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 트럼프 얼굴이 들어간 250달러 지폐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지폐 시안에는 트럼프가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한 혐의로 기소돼 교도소에 출석했을 때 정면을 노려보며 찍은 머그샷이 새겨져 있다. 45대, 47대 대통령인 트럼프를 뜻하는 4547 숫자도 보인다. 트럼프는 지폐 도안을 그린 영국인 화가와 연락하며 직접 의견을 냈다고 한다.

▷재무부 내 트럼프 측근 간부들이 이 작업을 주도하고 있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초상을 지폐에 넣는 건 현행법 위반이다. 지폐 종류도 1, 2, 5, 10, 20, 50, 100달러로 법에 정해져 있다. ‘트럼프 250달러’를 발행하려면 법부터 바꿔야 하는데 통과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런데도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현직 대통령이 그려진 250달러를 발행하는 데 부적절한 점은 없다”며 믿기 힘든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이 와중에 바른말을 한 사람이 퍼트리샤 솔리메네 재무부 조폐인쇄국장이었다. 그는 법적 절차적 한계가 많다며 반대했다가 최근 경질됐다. 반대 이유에 대해선 “나 개인과 조직의 가치를 희생시킬 순 없었다”는 입장을 냈다. 공직자로서 당연한 처신이지만, 트럼프 정부에서 이런 직언을 했다간 무사하기 힘든가 보다. 트럼프의 수사 중단 요구에 불응한 연방수사국(FBI) 국장, 불법 이민 단속 당국에 납세자 정보 제공을 거부한 국세청장, 백신 음모론에 반대한 질병통제예방센터 국장이 이미 줄줄이 해임됐다.

▷미국 지폐에는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등 굵직한 업적을 세운 전직 대통령들이 주로 새겨져 있다. 트럼프가 벌써부터 자기 얼굴을 넣으려고 하는 건 미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조바심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왕정이 아닌 민주 국가에서 현직 지도자가 지폐에 자기 얼굴을 넣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독재 국가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북한의 김일성 정도가 있을 뿐이다. 자칫 이런 독재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뿐이라고 직언할 수 있는 참모가 트럼프 정부에선 씨가 말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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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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