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차기 주자들 너도나도 “용산 안 간다”

3 weeks ago 12

윤석열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의 빠른 실행을 약속하며 “좋아, 빠르게 가”를 외치곤 했다. 그 시원한 외침은 ‘밈(meme)’으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말 그대로 ‘빠르게 가’였다. 애초 광화문 집무실을 공약했지만 당선 열흘 만에 용산 집무실로 바뀌었다. 그리고 50일이 지난 2022년 5월 10일 취임 당일 국방부 신청사에 마련된 집무실로 출근했다. 집을 이사해도 두 달은 더 걸릴 법한데, 국가 최고 보안시설이 ‘번개 이사’를 한 것이다.

▷폐쇄적인 공간인 청와대를 떠나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집무실을 만든다고 했을 때만 해도 권위를 탈피한 일하는 대통령을 기대하는 국민이 많았다. 그런데 경호와 보안 문제 등을 이유로 난데없이 용산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광화문은 경호에 수반되는 시민 불편이 크고 안보 시설 구축이 마땅치 않은 반면에, 용산은 지하 벙커 등이 이미 갖춰져 비용이 적게 든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다지 타당한 설명은 아니다.

▷당시 전 합참의장 11명이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등의 연쇄 이동으로 안보 공백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실제 미국이 대통령실을 감청한 사실이 드러났고, 북한 드론이 대공 방어망을 뚫고 침투했다. 이전 비용도 끊임없이 불어났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까지 대통령 관저와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집행된 비용을 조사했더니 모두 832억 원이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이 얘기한 496억 원의 1.7배다. 야당에선 경기 과천으로 옮길 예정인 합참 신축 비용 등을 포함하면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외교 행사는 청와대 영빈관, 상춘재를 계속 이용했고 대통령 동선이 복잡해져 시민 불편도 결코 줄지 않았다.

▷상식적이지 않은 의사 결정의 퍼즐은 ‘무속’으로 맞춰졌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명태균과 지인의 통화 녹음에서 명 씨는 대선 직후 김건희 여사에게 “경호고 나발이고, 거기(청와대) 가면 뒈진다”고 했다고 주장한다. 김 여사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풍수가 백재권은 “청와대는 흉하다”, 무속인 천공은 “용산으로 가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백 씨는 관저 후보지였던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방문한 사실이 경찰 수사에서 확인된 바 있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용산 대통령실도 해체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야를 막론하고 유력 대선 후보들이 입주를 꺼리고 있어서다. “군사 쿠데타를 모의한 본산” “불통과 주술의 상징” “안보적 취약성” 등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3년 임차료로 832억 원이나 내고 방을 뺄 판이다. 윤 전 대통령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용산 대통령실을 백악관 웨스트윙처럼 개방적인 공간으로 만들겠다더니 정작 그곳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용산 대통령실은 ‘구중궁궐’이라던 청와대보다 더한 공간이었나.

횡설수설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정치를 부탁해

    정치를 부탁해

  • 오늘과 내일

    오늘과 내일

  • 기고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