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전엔 北 압도한 軍이 있었다 [김선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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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기명 칼럼 11년전엔 北 압도한 軍이 있었다 [김선걸 칼럼] 北지뢰 가능성 일주일 뭉개軍, 국민생명 보호 의지 있나靑 주저하면 軍 용기 잃는다우리 장병 명예·사기 지켜야 2015년 8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로 초래된 남북 고위급 접촉이 같은달 25일 0시 55분께 타결됐다. 무박4일, 총 43시간의 마라톤 협상 후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25일 새벽 청와대 춘추관에서 남북고위급 회담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김재훈기자] 2015년 8월4일.군사분계선 인근 지뢰폭발로 한국 장병 두명이 발목과 무릎을 잃었다.합참은 즉시 조사에 착수해 엿새 후 8월10일 북한소행임을 발표했다. 당일 오후 11년만에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조사부터 응징까지 엿새, 주저함이 없었다.8월20일 북한이 확성기를 향해 포를 쐈다. 우리는 K9자주포 수십발을 발사지점에 되받아 쏘고 최고경계태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최후통첩’‘완전무장’, 살벌한 표현이 오갔다. 그러나 오후에 북측은 먼저 협상을 제안했다.그리고 판문점에서 시작된 고위급협상.남측 대표는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이었다. 평생 야전과 작전을 떠나지 않은 ‘북이 가장 두려워하던 군인’.청와대에 브리핑룸이 설치됐다. 출입기자이던 필자도 무박4일을 기자실에서 보냈다. 브리핑은 낮과 밤, 새벽에도 시시각각 계속됐다.북은 막판까지 ‘남측 자작극’을 주장하다 결국 두손을 들었다. 나흘만에 유감표명과 재발방지에 서명했다. 이례적인 굴복이었다.당시 지켜봤던 ‘압도하는 협상’의 원칙은 이렇다. 핵심은 리더의 신속하고 확고한 결단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개회의에서 “북한이 사과나 재발방지약속을 않으면 상응조치와 확성기 방송을 계속하겠다”고 못박았다. 북측 몽니 때 두차례나 협상단에 철수를 지시했다. 철수하려는 김 실장을 북측이 화장실까지 따라와 붙잡았다는 일화가 회자됐다.뒷배는 국민의 지지였다. 북 도발에 분노한 여론이 팽배했다. 합의 직후 한국갤럽 조사에서 박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는 49%로 한 주 만에 15%p 뛰어 취임 후 최대 상승폭, 남북 협상은 “잘됐다”가 65%(잘못됐다 16%)를 기록했다. 리얼미터 지지도는 49.2%, 청와대 ‘원칙 견지’를 상승 요인으로 짚었다.협상장이 남쪽 ‘자유의 집’으로 홈그라운드였고, 보안이 우수한 통신 인프라, 협상자의 건강상태 등 제반여건도 유리했다. 그럼에도 결국 핵심은 청와대의 결기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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