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에 1000만원 넘는 얇은 관… 초정밀 기술로 외산 벽 넘는다”[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2 hours ago 6

심장-뇌혈관 치료기기 국산화한 엔벤트릭
존슨앤드존슨-LG 출신 남매, 수십년 현장 경력 들고 창업
글로벌 거대 기업들 눈 피해 기술과 특허로 높은 장벽 쌓아
PFA-뇌경색 치료기기 혁신… “국산 기술로 세계시장 진출”

민지영 엔벤트릭 각자 대표가 8일 서울 구로구 사무실에서 자사 펄스장 절제술 카테터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민지영 엔벤트릭 각자 대표가 8일 서울 구로구 사무실에서 자사 펄스장 절제술 카테터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국내 수술실에서 심장과 뇌혈관 안쪽으로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기기들은 오랫동안 외산의 영역이다. 부정맥 환자의 심장 속에서 고주파를 쏴서 박동 리듬을 바로잡는 카테터(몸속에 들어가는 가는 관 모양 의료기기)도, 급성 뇌경색 환자의 혈전을 끌어내는 스텐트 리트리버(철망형 구조물로 혈전을 빼내는 기구)도 미국과 유럽의 거대 의료기기 회사 이름을 달고 들어왔다.

엔벤트릭은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 쓰는 이런 장비들의 성능을 혁신해 국산 기술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겠다고 나선 회사다. 8일 서울 구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민지영 대표(51)는 “우리가 만드는 기기는 환자가 평생 한 번도 안 만나는 게 제일 좋다. 그런데 한 번 만나야 한다면 그 순간에는 정말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쓰이는 의료기기를 만든다는 자각이, 이 회사의 문제의식이자 출발점이었다.

● 40대 중반 남매의 창업

민성우 엔벤트릭 각자 대표가 독일 의료박람회에 참가한 모습. 그는 미국에 주로 체류하면 연구개발 부문을 이끌고 있다. 엔벤트릭 제공

민성우 엔벤트릭 각자 대표가 독일 의료박람회에 참가한 모습. 그는 미국에 주로 체류하면 연구개발 부문을 이끌고 있다. 엔벤트릭 제공
창업의 밑바탕은 연구실이 아니라 산업 현장이었다. 민 대표는 LG CNS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며 프로세스 혁신과 경영을 다뤘다. 공동창업자이자 남동생인 민성우 대표(50)는 스탠퍼드대에서 기계공학과 바이오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를 전공했다. 이후 세계적인 의료기기 기업인 존슨앤드존슨과 애보트에서 카테터와 스텐트 개발을 15년간 해온 엔지니어다.

각자 대표로 엔벤트릭을 운영중인 두 사람은 대기업 생활을 하며 비슷한 한계를 봤다. 좋은 기술이 있어도 결국 글로벌 대기업의 브랜드와 유통망 안에서만 움직이고, 한국 병원 현장은 여전히 외산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의료기기 산업 현장에서 15년, 20년, 30년씩을 경험한 전문가들을 모아 시장과 인허가, 세일즈까지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창업했다”고 했다. 그렇게 2019년 7월, 한국을 본사로 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아카디아에 연구개발(R&D) 거점을 둔 엔벤트릭이 출범했다.

● “잘 아는 혈관 분야에 집중”

창업에서 내세운 원칙은 2가지는 명확했다. 먼저 “우리가 가장 잘 아는 혈관계 중재 시술 디바이스만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시장에서 팔리는 기술로 사업화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원칙으로 뇌혈관, 심장 전기생리학(EP), 심혈관 세 분야를 정했다. 자체 브랜드 제품과 위탁 연구·개발·생산 사업을 함께 키웠다. 의료기기는 제품을 잘 만든다고 바로 매출이 나는 산업이 아니다. 설계와 검증에 4∼5년, 인허가에 다시 1∼3년이 걸리기도 한다. 엔벤트릭은 그 긴 공백을 버티기 위해 글로벌 기업의 개발과 생산을 대신 해주는 기업 간(B2B) 사업을 병행했다. 지난 3∼4년간 누적 60억원 안팎의 매출을 이 부문에서 먼저 만들었다. 몇 년 동안은 자신들의 활동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기술 완성에 몰두했다. 민 대표는 “혈관계 기기 시장은 존슨앤드존슨, 메드트로닉, 스트라이커, 애보트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는 곳이어서 너무 이른 시점에 기술 방향이 드러나면 불리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엔벤트릭은 개발 완료, 임상 데이터, 인허가, 특허가 일정 수준 쌓이기 전까지는 몸을 낮추는 전략을 택했다.

● 부정맥-뇌경색 고치는 기기 혁신

엔벤트릭이 기술적으로 먼저 주목받은 분야는 부정맥 치료용 EP 카테터다. 부정맥은 심장 안의 특정 부위에서 전기 신호가 비정상적으로 흐르며 생기는데, 이를 카테터로 찾아가 에너지를 가해 없애는 방식이 대표 치료다. 과거에는 고주파와 냉각 방식이 주류였지만, 근래에는 펄스장 절제술(PFA)이 주목 받는다. 아주 짧고 강한 전기 펄스를 가해 특정 심근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시켜 치료하는 방식이라 열 손상이 적고 시술 효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엔벤트릭에 따르면 글로벌 EP 디바이스 시장은 약 250억달러(약 38조원) 규모이고, 이 중 PFA는 2030년 100억달러(약 15조원)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엔벤트릭은 차세대 기술 흐름을 읽고 PFA 카테터 개발에 일찍 뛰어들었다. 민 대표는 “3년 전 CDRMO 비즈니스로 PFA용 카테터들을 개발했고, 임상 결과가 굉장히 좋았다”고 했다. 1회용 제품인 PFA 카테터는 길이가 1m 조금 넘는 데 가격은 1000만원이 넘는다.

뇌혈관 사업은 뇌경색 환자의 혈전을 제거하는 스텐트 리트리버와 접근용 카테터를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뇌혈관 치료 시장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빠르게 성장한 분야는 기계적 혈전 제거술이다. 혈전이 뇌혈관을 막으면 몇 시간 안에 혈류를 회복시켜야 하고, 이때 스텐트 리트리버는 혈전을 직접 붙잡아 꺼내는 핵심 장비다. 민 대표는 “예전에는 약만 쓰던 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실제로 기기를 넣어 혈전을 기계적으로 꺼내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올해 1월 엔벤트릭은 뇌혈관 깊숙이 접근하는 카테터 ‘에보글라이드(EVOGLIDE)’로 식약처 품목허가를 받았고, 6월에는 스텐트 리트리버 ‘울트리바(ULTRIVA)’ 허가까지 획득했다. 이 두 제품으로 뇌경색 치료의 핵심 장비 라인업을 거의 완성했다는 게 회사의 판단이다. 가격은 개당 가격은 수십만∼수백만원 수준이다.

● “모순적 특성을 조화시켜 완성도 높이는 게 기술”

서울 구로구에 있는 카테터와 스텐트 리트리버 등의 생산 공장 내부. 엔벤트릭 제공

서울 구로구에 있는 카테터와 스텐트 리트리버 등의 생산 공장 내부. 엔벤트릭 제공
엔벤트릭이 만드는 카테터는 극한의 정밀 구조물에 가깝다. 뇌와 심장 안으로 들어가는 카테터는 머리카락 굵기에 가까운 부품과 합금, 폴리머가 현미경 아래에서 수작업으로 결합되고 조립된다. 2미터 가까운 경로를 따라 들어가면서도 끊어지지 않아야 하고, 동시에 놀랄 만큼 유연해야 한다. 민 대표는 “유연한데 강해야 하고, 작으면서도 조종이 잘돼야 한다. 서로 모순되는 조건들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싸움”이라고 했다. 그래서 엔벤트릭은 공정 기술과 구조 설계에 집착한다. 이 회사 PFA 카테터는 기존 제품에 비해 얇으면서 여느 제품과 달리 진단과 치료를 한 번에 할 수 있는 구조다. 민 대표는 “한 번에 진단과 치료를 하는 제품으로 의사가 의도한 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 시술의 성공률을 높였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울트리바에 적용된 기술은 엔벤트릭이 자체 개발한 ‘아크원(Arch-1)’이다. 초소형 단일 튜브를 정밀 가공해 유연성과 지지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기술이다. 엔벤트릭은 다양한 혈전 유형을 잡을 수 있는 구조, 패키징을 더 작게 만드는 방식, 엑스선에서 더 또렷하게 보이는 표식(마커) 구조를 실현했다. 시술 중 뇌혈관 속 기기의 위치와 혈전의 길이, 전개 상태를 더 잘 읽히게 만든 점을 차별점으로 강조한다.

● “당연히 세계 시장이 목표”

민 대표는 뇌혈관 분야는 자체 브랜드를 중심으로, 심혈관은 대기업에 기술을 공급하는 기업간(B2B) 비즈니스 중심으로, 심장 EP는 B2B에서 시작해 자체 브랜드 제품으로 확장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제품을 오래 팔아온 총판과 대리점을 먼저 설득한 뒤, 그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실제 시술을 많이 하는 의사들에게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의료기기 시장은 미국이 가장 크고 다음은 유럽 시장이다. 민 대표는 “국내를 시작으로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진출한 뒤 세계 시장 전체에 우리 기술을 선보일 것”이라며 “뇌혈관과 심장 안쪽에서 치료에서 의사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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