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된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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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공정거래법 제정 이후 46년간 유지돼온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제도가 존폐 기로에 섰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정위의 고발권한 독점이 ‘봐주기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지방자치단체 등에도 직접 고발권을 주라고 주문하면서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3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전속고발권 개편과 고발요청권 확대 방안을 보고했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등 공정위 소관 법률 위반 행위에 대해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공정거래 관련 법률은 일반 형사법과 달리 경제적 분석이 중요한 만큼 전문성을 갖춘 공정위가 먼저 형사 처벌이 필요한지 판단하라는 취지다.

46년 된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한다

주 위원장은 회의에서 불공정 피해를 본 국민이나 기업이 직접 법 위반 의혹 업체를 고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불필요한 고발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국민 300명’ ‘사업자 30개’ 등 일정 수 이상이 참여하는 경우로 고발권을 제한하겠다고 했다.

검찰총장, 감사원장,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조달청장에게 부여된 고발요청권을 50개 중앙행정기관과 17개 광역자치단체, 226개 기초자치단체로 확대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공정위는 다른 국가기관의 고발 요청을 받으면 검찰에 고발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공정위가 고발권한을 독점하다 보니 사건을 덮어버릴 권한도 전적으로 갖게 된다”며 “지방정부에도 (고발요청권이 아니라) 고발권을 주라”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일부 국무위원이 지자체의 전문성 부족과 고발 남용 우려를 제기하자 “지방정부를 무시하지 말라. 제가 경험한 바로는 지방정부가 그렇게 엉터리로 막 하지 않는다”며 “이들에게 직접 고발권을 주는 방향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계는 공정위뿐 아니라 지자체와 일반 국민에게도 고발권을 주면 고발 남발과 경영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취지는 이해하지만 노조나 일부 단체 등이 기업을 대상으로 협상 혹은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소지도 많아 보인다”며 “악의적 고발을 걸러낼 정교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국민·사업자도 담합 고발 가능…"고발 남용에 기업 위축"
소비자, 비싼빵 먹어도 고발 못해"…기업 "경제형벌 합리화 병행돼야"

경쟁법 위반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 고발권’은 시장 경제의 특수성을 고려해 도입된 제도다. 담합이나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는 경제적 파급 효과가 매우 큰만큼 시장 상황을 잘 아는 전문 기관이 과징금 처분으로 충분한지 혹은 형사 처벌이 필요한 지를 먼저 판단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공정위가 이 권한을 ‘기업 봐주기’에 활용한다는 비판이 나오며 매 정권마다 폐지론이 제기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31일 지방자치단체 등에도 고발권을 부여하는 파격적인 개편을 주문하면서 이번에는 전속 고발권 폐지가 현실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 李 “지방정부 무시하지 말라”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공정위 전속고발 폐지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국민 300명 혹은 기업 30개가 고발하는 경우 공정위 고발 없이도 공소 제기가 가능하게 하고, 50개 중앙행정기관과 243개 지자체 등 국가기관에는 고발 요청권을 주겠다고 보고하자 이를 “우회적인 대안”이라며 즉각 보완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밀가루나 설탕 담합으로 소비자가 비싼 빵을 먹어도 고발을 못 하는 구조가 이상하지 않느냐”며 “공정위가 권한을 독점하다 보니 사건을 덮어버릴 권한도 갖게 된다”고 했다.

국무위원들은 신중론을 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경쟁사가 제도를 악용해 고발할 경우 법무팀이 없는 중소·중견기업은 대응 역량이 없다”며 세심한 설계와 경제단체들과의 소통을 요청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남용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가격담합과 공급제한 및 시장분할 등 중대한 악성 범죄로만 대상을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조원철 법제처장은 “대부분의 국가는 경쟁 당국에 단독 고발권을 둔다”며 “공정거래 사건은 단순 사법적 판단을 넘어 국가 경제 정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발권은 이미 공정위의 독점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공정거래법상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위반행위 중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안에 대해선 검찰총장, 감사원장, 중기부 장관, 조달청장 등이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가 반드시 고발을 하도록 하는 ‘의무고발요청제’가 도입돼있다는 점에서다. 주 위원장은 “검찰에서 요청이 오면 공정위는 고발할 수밖에 없어 실질적으로 (독점이) 아니다”고 했다.

실제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초 야놀자·여기어때컴퍼니 등이 우월적지위를 이용해 입점업체에 피해를 입혔다며 고발요청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기업이)나쁜 짓을 안 하면 되지 않느냐”며 정면 돌파 의지를 재확인했다.

◇ “형사처벌 범위 함께 검토해야”

공정법 전문가들은 경쟁법 위반 형사 처벌의 경우 일반 형사 사건과 달리 위반 행위의 효과를 분석하는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담합을 예로 들면 사법 당국이 곧바로 개입하기 전에 공정위가 경쟁제한성을 판단해 시정명령 등 행정 제재로 충분한지, 과징금 규모는 적절한지 등을 판단한다. 중대 사건은 전원위원회에서 기업이 고용한 로펌과 공정위 조사관과의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오간다.

한 공정법 전문 변호사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은 경제법 사건이 일반 형사사건과 다르다는 점에서 도입된 제도”라며 “공정위는 법원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 전반과 시장 경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야 하는 특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전속고발권을 폐지한다면 카르텔이나 시장지배력 지위 남용 등 중요한 경제범죄에 대해선 공정위의 조사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면밀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경제계는 기업들의 수사·소송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개편 시 충분한 공론화와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경쟁법 전반에 걸쳐 형벌 조항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전속고발권 개편 논의와 함께 형사처벌 범위에 대한 검토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훈/박종관/노유정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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