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한 시간에 가장 민감하게 떨리는 몸의 언어를 무대 위에 펼쳐 보이고자 합니다. 증오와 냉소를 넘어 연대하려고 애쓰는 몸짓을 목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12일 서울 종로구 교원투어에서 열린 28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기자간담회에서 이종호 SIDance 예술감독은 이번 축제의 기획 의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세계 현대무용 작품을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이 축제는 오는 9월 10일부터 28일까지 서울남산국악당, 은평문화예술회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등 서울 주요 공연장에서 열린다. 한국 포함 13개국이 참가해 38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SIDance는 1998년 서울에서 13차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세계총회를 유치한 계기로 탄생했다. 지난 27년간 국내외 1000여개 단체와 무용예술가들이 참여해 무용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관객들은 해외 최정상급 단체의 공연을 관람할 기회를 갖고, 한국 무용가는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무대가 된다.
이 예술감독은 하랄 베하리의 '바티 보이', 아르민 호크미의 '쉬라즈' 등 5편을 '광란의 유턴'이라는 주제로 묶어 소개한다. 오늘날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무용 언어로 해석하고 성찰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그는 "한국 무용계는 다른 장르에 비해, 그리고 다른 나라 무용계에 비해 사회적 이슈에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며 "무용예술가들에게도 시대 앞에서 예술가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광란의 유턴' 특집에서 주목받는 작품은 안무가 하랄 베하리의 '바티 보이(Batty Bwoy)'다. 바티 보이는 자메이카에서 퀴어 남성을 폄하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사회가 금기시해온 욕망과 낙인의 흔적을 춤으로 표현한다. 베하리는 이 작품으로 2023년 노르웨이 최고의 공연예술상인 '헤다상'에서 최우수 무용작품상을 수상하며 찬사를 받았다.
이 밖에도 해외초청, 국내초청, 국제합작, 기획제작 등 다채로운 무대가 준비됐다. 해외초청작으로는 포르투갈 단체 CRL-센트라우 엘레트리카의 '밤(Noite)'이 있다.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춤과 음악 공연이다. 국내 작품으로는 배진호 예술감독이 이끄는 무용단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의 '배드 스파이시 소스(Bad Spicy Sauce)'가 눈길을 끈다. 이번 공연은 '성(性)'을 주제로 한 '색정만리(色情萬里)' 연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허세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