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훈 위즈코어 대표제조 인공지능(AI)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반복되는 공정을 자동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혁신은 설계와 제조를 완벽하게 연결하는 'Design-to-Manufacturing'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대한민국에는 지멘스나 다쏘시스템 같은 글로벌 제조 AI 플랫폼 기업이 등장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우리 산업을 지배해온 '하드웨어 우선 정책'과 더불어 무형의 핵심 자산인 설계 솔루션을 외산 캐드(CAD)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기술적 사대주의, 그리고 제조 현장의 파편화된 '데이터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수많은 제조 기업은 여전히 수많은 '데이터의 섬(Data Silo)'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설계 데이터는 CAD 시스템에, 생산 데이터는 제조실행시스템(MES)에, 설비 데이터는 제각기 다른 관리 시스템에 파편화돼 존재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아무리 고성능 AI를 도입해도 근본적인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AI가 유의미한 학습을 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단절 없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디지털 쓰레드(Digital Thread)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사실 제품의 핵심 정보는 설계 데이터에 담긴 제품제조정보(PMI)에 응축돼 있다. 치수, 소재, 공차, 구조, 기능 등 제품을 구성하는 모든 제조 정보의 출발점이 바로 설계다. 하지만 이 금쪽같은 설계 데이터가 생산 현장으로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는다면, AI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결과값만 보고 판단하는 사후 분석 도구에 머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정한 제조 AI의 혁명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시각언어모델(VLM) 기반 AI는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로 보여주고 있다. AI가 2D·3D 도면의 기하학적 형상을 이해하고 설계자의 의도를 해석해 자동으로 공정을 설계하거나 견적을 산출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고도화되면 △도면 분석 △가공 경로 생성 △공정 계획 △견적 산출로 이어지는 제조 전 단계가 지능적으로 자동화될 것이며, 이는 숙련 기술자 부족으로 시름하는 중소 제조기업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기술적 정점(頂點)은 산업용 제품의 디지털 신분증이라 불리는 자산관리쉘(AAS) 기반의 디지털 트윈 접목이다. AAS는 설비와 제품을 표준화된 디지털 자산으로 표현하는 국제 표준 기술이다. 이를 통해 흩어져 있던 설비, 로봇, 제품, 공정 데이터를 하나의 통합 구조로 묶을 때 비로소 우리 제조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도 강력한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을 확보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제조 데이터의 핵심 기술을 해외 플랫폼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결국 우리 산업 데이터와 기술 주도권까지 외부에 종속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CAD 커널(Kernel)과 같은 설계 데이터의 원천 기술 확보는 앞으로 국가 생존을 좌우할 전략 기술이 될 것이다. 우리는 '기술 종속'이 곧 '데이터 예속'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경계해야 한다.
결국 제조 AI는 단순히 새로운 소프트웨어 하나를 도입하는 차원이 아니라, 산업 구조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AI 전환(AX)'의 정수(精髓)다. 설계자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디지털 데이터라는 혈맥(血脈)을 타고 현장의 로봇과 설비로 즉각 연결돼 실물 제품으로 구현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 제조 산업이 미래에도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금 바로 설계와 제조를 연결하는 통합 AI 플랫폼 전략을 국가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설계가 곧 제조가 되고, 제조가 다시 데이터가 되는 그 지점(Design-to-Manufacturing)에서 우리나라 제조 산업의 새로운 100년이 시작될 것이라 확신한다.
박승훈 위즈코어 대표이사 paul@cad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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