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강단 위의 MZ, 식탁 앞의 우리

2 weeks ago 12

[MZ 톡톡] 강단 위의 MZ, 식탁 앞의 우리

어느덧 추운 겨울이 지나고 완연한 봄이 됐다. 봄은 만물의 생명이 태동하고 꽃이 피는 계절이지만, 의료계에서는 각종 학회가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요즘 학회 발표장에 들어서면 놀라운 발표를 자주 접한다. 특히 어린 MZ세대 의사들의 발표는 슬라이드부터 다르다. 깔끔한 레이아웃, 부드럽게 넘어가는 애니메이션, 어디선가 본 듯한 세련된 인포그래픽. 내가 의과대학 학부생과 전공의 시절만 해도 파워포인트 배경색 하나 고르고 전반적인 그래프 디자인과 색감을 맞추는 것조차 쉽지 않아 밤을 새우던 기억이 생생한데, 지금 MZ 의사들은 새로운 도구를 다루는 감각 자체가 다르다.

영어 발표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유창해서 고개를 숙이고 자료집을 뒤적이다가 ‘어, 북미권 외국인이 발표하나?’ 싶어 강단을 올려다보면 국내 타 병원 전공의가 발표 중이어서 놀랄 때가 꽤 자주 있다.

슬라이드와 내용, 언어까지 탄탄하게 준비했는데, 정작 마이크를 잡는 순간 목소리가 작아지거나 청중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실력은 갖췄지만, 아직 그 실력을 자신 있게 드러내길 어려워하는, 그 특유의 긴장감. 무대 위와 무대 아래의 온도 차가 느껴지는 순간, 나는 오히려 그 장면이 더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긴장감은 학회가 끝난 뒤 식사 자리에서 시작된다. 삼삼오오 자리를 잡는 와중에, MZ 의사들은 자연스럽게 자기들끼리 모인다. 굳이 선배 옆을 피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어쩌다 보면 테이블이 이미 세대별로 나뉘어 있다. 처음엔 ‘요즘 애들은 왜 저러나’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 역시 전공의 시절 교수님 옆자리에 자진해서 앉은 기억이 별로 없다. 다만 그때는 누가 앉으라고 하면 총알처럼 달려갔고, 지금의 MZ세대는 앉으라고 해도 어색해한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술자리는 더 난감하다. 잔을 권해볼까 하다가도 먼저 멈칫하게 된다. ‘혹시 이 행위 자체를 강요로 받아들이면 어쩌지?’, ‘불편하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결국 눈치를 보는 쪽은 선배인 나다. 나 역시 MZ세대 어딘가에 걸쳐 있는 세대고, 언제부터인가 권위는 내려놔야 한다고 배웠는데, 정작 어디서부터 어떻게 내려놔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조심하는 것과 눈치 보는 것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여전히 그 방법을 찾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도 선배 옆자리가 싫은 게 아니라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발표 슬라이드에는 AI가 어느 정도 정답을 제시해주지만 식탁 위 첫 한마디에는 그런 정답이 없으니 말이다.

강단 위의 완벽함을 만드는 것이 기술이라면, 식탁 앞의 어색함을 풀어내는 것은 여전히 사람 몫이다. 그리고 그 첫 한마디를 누가 먼저 꺼낼지. 그 해답이야말로 AI가 대신 써주지 못할, 우리 모두의 진짜 숙제일지도 모른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