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중앙아시아 5개국과 ‘영구적 선린 우호 및 협력 조약’을 체결하며 영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앙아시아 정상들과 무역, 광업, 농업 부문에서 협력 확대를 강조했다. 같은 시기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견제하며 중앙아시아에서 세를 확보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하지만 전통적 영향권을 침해당한 러시아의 심기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중앙亞서 입지 다지는 中
시 주석은 지난 17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제2차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과 ‘영구적 선린 우호 및 협력 조약’을 맺었다. 무역, 에너지, 인프라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2023년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열린 1차 정상회의에 이은 두 번째 회의로, G7 정상회의 개최 시기와 겹쳐 사실상 G7을 견제하려는 ‘세몰이 외교’라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시 주석은 이날 공개 석상에서 미국을 겨냥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관세 전쟁과 무역 전쟁에는 승자가 없고 일방주의와 보호주의, 패권주의는 모두에게 해를 끼친다”며 “중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국제 정의를 수호하고 패권주의와 강권 정치를 반대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이들과 경제 협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 간 교역액은 올해 1~5월 기준 2864억2000만위안(약 395억달러)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4% 증가했다. 시 주석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15억위안(약 2억890만달러) 규모 무상 원조도 약속했다. 이 자금은 생계 지원과 개발 프로젝트에 쓰일 계획이다.
각국 양자 회담에서도 전략적 구상이 이어졌다. 시 주석은 각국에 천연가스, 광물, 국제 철도, 법 집행 분야에서 협력 확대를 제안했다.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중국~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을 잇는 철도 건설의 조속한 추진을 촉구했다. 1990년대부터 논의된 이 철도 프로젝트는 그동안 진전이 없었지만 대러시아 제재로 중국·유럽 간 화물 수송이 러시아를 경유하기 어려워지자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 중국 행보에 속내 복잡한 러시아
중국의 중앙아시아 공세는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 심기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옛 소련 공화국들이 결성한 독립국가연합(CIS) 주도권을 쥐고 있는 러시아도 이 지역에서 중국 영향력이 커지는 게 달갑지는 않다.
러시아는 대외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흔들릴 수 없는 우정”이라고 포장하지만 실제 분위기는 다르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뉴욕타임스(NYT)가 입수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내부 문건에 따르면 FSB는 중국의 중앙아시아 전략을 러시아의 전통적인 영향권 침범으로 간주하고 있다. 해당 문건은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앞세운 중국의 경제·외교적 확장과 에너지, 디지털 인프라 투자가 러시아의 전략적 완충 지대를 잠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간첩 활동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 문건에서 FSB는 중국을 ‘적’으로 명시하고, 중국 정보기관이 러시아의 군사 활동을 정찰하고 과학기술 정보를 탈취하며, 북극 인프라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양국은 정면 충돌을 피하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 제재로 중국의 원유 수입, 기술 협력 등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알렉산드르 가부예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중국과의 관계가 위험을 감수할 만큼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고 분석했다. 중국 역시 러시아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에너지와 국방 기술,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를 견제하는 수단을 얻고 있는 만큼 실용적인 공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임란 쿠르시드 인도 국제평화연구센터(ICPS) 부연구위원은 “역사적으로 중국은 이념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현실주의 외교를 해왔다”며 “러시아 안보 전략에 불안을 주는 요소”라고 짚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