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브라질에 거침없는 내정개입…"前 대통령 마녀사냥에 50% 관세"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브라질의 정치상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경제력을 지렛대 삼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타국에 본격적인 내정 간섭을 시도하는 것이다. “미국과 세계를 경영하겠다”며 시작한 2기 정부에서 자신이 가진 권력의 한계를 시험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중이다.

○선거부정 편들며 관세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SNS에 브라질에 대해 50% 관세율을 8월1일부터 적용하겠다고 통지했다는 서한을 공개했다. 지난 4월2일 10% 관세를 통지한 것의 다섯 배다.

그는 이날 필리핀과 이라크 등 다른 7개국에 대한 서한도 함께 공개했지만, 다른 서한과 브라질에 대한 서한은 내용이 달랐다. 브라질의 현직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에게 보낸 이 편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이루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2019~2022년)이 “전 세계에서 존경받는 지도자”였다면서 그에 대한 재판이 “즉시 멈춰야 할 마녀사냥”이라고 규정했다. 또 브라질에 50% 관세를 적용하기로 한 이유에 대해 “브라질의 자유 선거에 대한 교활한 공격과 미국의 기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 때문”이라고 밝혔다.

2022년 브라질 대선에서 룰라 대통령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1.8%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신승했다. 이후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선거부정을 주장하며 대통령궁과 의회, 대법원 등 건물에 난입했다. 2021년 1월6일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회의사당에 난입한 것과 비슷했다. 브라질 검찰은 그가 룰라 대통령 암살, 군부 쿠데타 등을 계획했다는 이유로 그를 기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브라질의 행동이 “국제적인 불명예”라고 주장하면서 선거부정 주장에 힘을 실었다.

선거부정론이 SNS에 확산하면서 브라질 정부는 사회 혼란을 이유로 관련계정 삭제를 요구했으나 엑스(X·옛 트위터)는 거절했다. 브라질 대법원은 작년 8월 한때 엑스 접속을 차단하는 명령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기본적 표현의 자유’를 관세 부과 이유로 함께 언급한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브라질에 대해 무역법 301조를 위반했는지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은 주권 국가로 독립된 기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누구의 통제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시장은 남미 최대 경제대국인 브라질에 대한 공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이 공개된 후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달러대비 2.3% 급락했다. 증시 대표지수인 보베스파 주가지수 선물도 하락했다.

○‘표현의 자유’ 빌미로 공격

트럼프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우고 있지만, 동시에 트럼프주의를 전 세계에 전파하려는 의지도 갖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와는 일견 모순되는 부분이다. 트럼프 정부 각료들은 각국의 보수주의정치행동(CPAC) 행사 등 정치행사에 참석해 우파 정치인들을 후원하고 상대 정치인을 비판하는 일에 적극적이다.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2월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유럽의 적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면서 유럽이 트럼프 대통령의 가치관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동맹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도 지난 5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CPAC 행사에서 반 유럽연합(EU) 성향의 대선후보를 지지하고 상대 후보를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특히 다른 나라에서 극우 정치인의 활동을 억제하는 것에 대해 ‘표현의 자유 위반’을 주장하며 개입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구글 메타 엑스 등 미국 빅테크에 대한 규제가 가져올 정치적 영향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EU “조만간 협상타결”

협상이 곧 타결될 수 있다고 알려진 EU와 인도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 무역담당위원인 마로스 셰프코비치는 “무역협정 프레임워크에 좋은 진전이 있었다”면서 “며칠 내로 협상 타결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인도와의 협상도 마무리 단계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달러화 대체 통화를 추진하는 BRICS 참석을 이유로 인도에 10% 추가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이 변수다. 인도 정부는 일단 BRICS 단일통화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미국을 달래면서도 중국과의 거래 등에서 현지통화를 쓰는 것은 탈달러가 아니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인도는 미국에 최선의 제안을 제시하고 응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50% 관세율을 예고한 구리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8월1일부터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예일대 예산연구소는 미국의 실효관세율이 17.6%로 올랐으며 이는 90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