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만 문제를 두고 중국과 전쟁에 돌입할 가능성에 대비해 일본과 호주에 구체적인 역할을 밝히라고 요구했다고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최근 몇 달 동안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이 일본과 호주의 국방당국자들과 만나 이 사안을 계속해서 제기해왔다고 복수의 소식통들이 전했다.
한 소식통은 "대만 유사시 직접 적용될 구체적 작전 구상과 훈련들이 일본과 호주와 함께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이어 "(콜비 차관의) 요구는 미국조차 대만 안보 보장에 관한 백지수표를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과 호주 정부를 놀라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간 미국은 대만 방어 여부를 명확히 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유지해 왔으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바 있다.
다만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다섯 차례나 공개적으로 대만 방어를 약속한 적이 있다.
한 미 국방 당국자는 콜비 차관이 동맹국들과 나눈 논의에 대해 "균형 잡히고 공평한 방식으로 억지력 강화 노력을 확대하고 가속화하는 방안"이었다고 설명했다.
콜비 차관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일본, 호주를 비롯한 여러 미국 동맹국 대표들이 전반적으로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FT 보도에는 한국 정부 역시 일본·호주처럼 대만 문제 관련 역할을 요구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미 국방부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유럽은 물론 인도·태평양의 주요 동맹국들에게도 방위비 인상을 지속적으로 압박해온 바 있다.
콜비 차관의 요청에 대해 일본 방위성은 "대만 유사시"라는 가정적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다고 반응했다고 FT는 전했다.
일본 방위성은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자국의 대응은 헌법, 국제법, 국내 법규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미국이 자국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서 동맹국들에만 구체적인 조처를 압박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잭 쿠퍼 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대만 방어를 약속하지 않았는데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 명확한 조처를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방부 전략 및 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콜비 차관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중용돼 '미국 우선주의' 국방정책 수립을 주도하고 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