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다정한 언어…아프리카에서 마주한 '살인 미소' [서병철의 은퇴 후 잘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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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진심 어린 미소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한경진

이런 진심 어린 미소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한경진

평범한 일상에서 가장 어색함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나에게는 엘리베이터 안이다. ‘내가 먼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해볼까’라며 시도해 본 적이 있다. 막상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쭈뼛쭈뼛해지면서 미소조차 건네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억지 미소를 지으며 “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이웃은 시선이 갈 곳을 잃은 채 애꿎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 황급히 내리는 것이 아닌가. 불과 몇 초간이었지만 그 거북한 침묵이 어찌나 길던지. 미소조차 교환하기 어려운 이 좁은 공간, 이웃은 여전히 낯선 타인이다. 민망한 순간을 몇 차례 겪은 후,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잠시 어색함을 견디고 내리곤 했다.

팁을 위한 자본주의적 미소

누군가를 만나면 표정이 먼저 보인다. 처음 만나는 사람의 경우는 더 의식하게 된다. 무표정한 것보다 미소를 머금은 사람이 호감을 주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특히 밝게 웃는 미소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무뚝뚝한 사람조차도 왠지 마음이 열려서 상대방에게 미소로 화답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 심리학자 폴 에크먼(Paul Ekman)과 월리스 프리즌(Wallace Friesen)은 미소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뒤셴(Duchenne) 미소’는 ‘진짜(진심의) 미소’를 뜻하며, 입꼬리와 광대가 올라가고 눈가에 주름이 잡히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팬암(Pan Am) 미소’는 ‘가짜 미소’를 뜻하며, 아메리카 항공 승무원들이 보여주던 인위적 미소로 입만 웃고 눈가 주름이 거의 없는 예의상 짓는 미소다.

미국 땅을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는 내가 출장으로 미국을 간 적이 있다. 일을 마치고 식사하러 갔는데 한 종업원이 친한 친구를 대하듯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 줬다. 음식을 먹고 있는 도중에도 수시로 와서 “음식 맛은 어떠세요?”, “더 필요한 것은 없나요?”라고 물었다. 너무 지나치게 친절한 것 같아 당황하기도 했지만, 특별한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제 후 나오는 데 종업원이 나를 쫓아오며 “혹시 제 서비스에 불만이 있었나요?”라고 따지듯이 묻는 것이 아닌가. 내가 준 팁 금액이 본인의 기대 금액보다 적어서 불만을 토로한 것이었다. 진심이 담긴 듯한 종업원의 환한 미소가 더 많은 팁을 받기 위한 ‘팬암 미소’였음을 뒤늦게 알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천연 미소를 지닌 피리 부는 롯지 아저씨

뒤셴 미소는 최근 다녀온 아프리카 여행지에서 만난 두 종업원을 보고 이해하게 되었다. 먼저 짐바브웨 한 롯지(Lodge)에 근무하는 종업원의 사례다. 그의 주 업무는 손님이 도착하면 환영의 의미로 피리를 부는 것이다. 거무스름한 얼굴에 하얀 이를 내보이며 혀를 살짝 내밀고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 만나자마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웃음소리도 크게 “까르르”하며 독특했다. 머리에 두른 머리띠가 이색적이어서 다가가 물었다.

"살 수 있을까요?"
“아들에게 연락해서 있는지 알아볼게요.”

운 좋게도 마지막 남은 한 개가 있다며 아들이 가져다주었다. 가격도 흥정했는데 내가 원하는 만큼 흔쾌히 수용해 줬다. 머리띠가 궁금해져서 이름과 의미를 물어보니 이렇게 친절하게 적어 주었다.

Kwambe (머리띠 이름)

Put on by traditional chief(s) as a sign of respect by people. (전통적인 추장이 쓰고, 사람들이 존경을 표하는 상징임)

의미를 들으니 다양한 색상의 수백 개 작은 구슬로 손수 엮은 머리띠가 더욱 가치 있는 물건처럼 귀하게 보였다. 서로 머리띠를 쓰고 사진을 찍으며 고객을 위한 억지 미소가 아닌 그의 천연 미소를 다시금 만났다. 이것을 볼 때마다 그의 진심 어린 미소가 떠오른다.

천연 미소를 지닌 피리부는 롯지 아저씨 ©구현정

천연 미소를 지닌 피리부는 롯지 아저씨 ©구현정

살인 미소까지 장착한 식당 청년

그룹 퀸(Queen)의 전설적인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으로 알려진 탄자니아 잔지바르(Zanzibar)섬에서 또 다른 진짜 미소를 마주했다. 석양 사진을 담고자 찾은 파제 해변의 전망 좋은 식당을 찾았다. 주문 후 기다리는데 한 종업원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다가왔다. “죄송하지만 주문한 와인이 없어요. 어떡하죠?” 미안함을 미소로 승화하는 순박한 청년이었다.

만약 손님이 다른 종류를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근처 가게에 가서 사 올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럼, 그 와인으로 그냥 주세요.” 했더니 너무 감사하다고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백만 불짜리 환한 미소와 함께 신이 나서 몸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이게 뭐라고 그렇게 좋아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진심이 담긴 그의 미소로 인해 일행들도 웃음이 저녁 내내 끊이지 않았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연구에 따르면, 환한 미소를 짓는 직원은 고객에게 단순히 '친절함'을 넘어 '유능함'과 '신뢰성'이 높다고 한다. 이는 미소가 인간관계에서 협력을 끌어내는 강력한 사회적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두 종업원이 건넨 것은 체계적인 교육을 통한 서비스도, 세련된 매너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른바 ‘자본주의적 미소’라 불리는 입꼬리만 끌어올린 가공된 친절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의 얼굴 가득 번진 진짜 미소는 ‘살인 미소’라고 표현해야 적절하지 않을까. 눈가에 잡히는 진실한 주름과 하얀 치아가 드러나고 입꼬리와 광대가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환한 미소.

멋진 석양이 아름다운 탄자니아 잔지바르 파제해변 ©서병철

멋진 석양이 아름다운 탄자니아 잔지바르 파제해변 ©서병철

어색한 침묵보다 환한 미소를

나는 미소도 일종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특히 진심 어린 미소는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하는 다정한 언어다. 다정한 언어로 대화한다면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그 좋은 인간관계는 지치고 때론 힘겨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기도 하고, 즐거움과 행복감도 느끼게 할 것이다. 신경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뒤셴 미소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천연 마약이라 불리는 엔도르핀과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한다고 한다. 이는 미소의 힘이 행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엘리베이터에서 타인과 마주친다면, 먼저 미소라도 지어보면 어떨까. 이왕이면 눈꼬리에 주름까지 잡히면 더 좋고. 그 진짜 미소가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따스한 온기를 전할 것이다. 설사 상대방이 외면한들 어떤가. 우리가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에게 건네는 것이 어색한 침묵이 아니라 바로 ‘환한 미소’면 좋겠다. '살인 미소'를 지닌 아프리카 두 행복 전도사와의 만남 후, 내 입꼬리와 눈가 근육이 움직이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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