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타령하다 망할 뻔"…주인 바뀐 英 4대 홈퍼니싱, 부활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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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가 지킨 英광]①
영국 헤리티지 고집하다 경영난 시달린 英 브랜드들
소비자 취향·소비 트렌드·디지털전환 무시하다 큰코
대부분 파산 절차 밟은 후 헐값에 매각…영광의 그늘

  • 등록 2025-04-30 오후 4:49:01

    수정 2025-04-30 오후 2:49:07

[런던=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한때 영국 가정에 감성을 채운다는 평가를 받았다가 ‘아픈 손가락’으로 전락한 홈퍼니싱(home furnishing·집을 꾸미기 위한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 브랜드들이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급변하는 소비 트렌드와 글로벌 리테일 경쟁 심화, 디지털 전환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무너졌다가 새 주인을 만난 뒤로 부활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 헤리티지를 고수해온 이들의 움직임을 두고 현지 자본시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브랜드 재정비에 성공할 경우 고급 브랜드로 재도약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반면,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에 또 대응하지 못한다면 영국 헤리티지는 과거의 영광에 불과한 요소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로라애슐리·캐드키드슨…‘그 놈의 꽃무늬가 뭐길래’

‘영국 감성의 상징’으로 불리던 로라애슐리와 캐드키드슨은 영국 홈퍼니싱 업계의 ‘아픈 손가락’으로 전락한 대표적인 사례다.

우선 로라애슐리는 지난 1950년~60년대 플로럴 패턴과 특유의 빈티지 감성을 담은 가구와 벽지 등을 선보이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국가별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아시아와 미국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영국 감성이 곧 브랜드 정체성이라고 본 로라애슐리는 소비자 취향을 읽지 못했고 실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회사는 이후 생존을 위해 직접 운영 체제를 접고 라이선스 체제로 운영 방식을 전환했다. 매장 임대료와 직원 급여, 물류비용과 같은 고정비용을 줄이는 대신 로열티 수익은 보장받는 구조로,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수익을 포기한 셈이다.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사업이 사실상 중단된 이후 로라애슐리는 온라인으로 사업만으로 명맥을 이어가다가 올해 1월 미국의 브랜드 액셀러레이터인 ‘마키브랜즈’에 인수됐다. 현재 회사는 마키브랜즈의 주도로 다양한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브랜드 재건에 나서고 있다.

캐드 키드슨 역시 빈티지 플로럴 프린트로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지만, 이후 심플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소비자 취향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온라인 판매 채널에 뒤늦게 나서면서 경쟁에서 밀렸고,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매장 운영이 타격을 입으면서 실적이 급락했다.

캐드키드슨은 2022년 구조조정 전문 투자사인 힐코캐피털 품에 안겼지만, 그로부터 8개월 만에 다시 회생매물로 M&A 시장에 등장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으면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고, 보유 자산을 매각해 단기 수익을 끌어올리려던 힐코캐피털의 계획에도 차질을 빚었다. 이후 영국의 리테일 기업 넥스트는 캐드키드슨의 브랜드명과 도메인, 지적재산권을 850만파운드에 인수했고, 지난해 10월 런던에 매장을 오픈하는 등 재도약에 나섰다.

해비탯·힐스…영국스러움 고집하다가 경영난 영국식 홈퍼니싱 시장을 주도했던 해비탯과 힐스도 영국 헤리티지와 오프라인 전략에 안주하다가 대가를 치렀다. 두 브랜드는 온라인 소비 트렌드에 뒤늦게 대응하고, 소비자 취향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선 1964년 설립된 해비탯은 모던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2000년대 후반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하는 소비 트렌드를 외면했다. 전통적 오프라인 전략을 고수한 결과 해비탯은 이케아를 비롯한 온라인 기반 경쟁사에게 밀렸다. 여기에 소비자들이 실용적이고 미니멀한 디자인을 선호했음에도 이를 반영하지 않은 점도 치명타를 입혔다. 해비탯이 지난 2011년 심각한 경영난을 겪다가 파산 보호 절차를 신청한 배경이다.

해비탯은 같은 해 홈 리테일 그룹(Home Retail Group)에 인수되며 가까스로 브랜드 명맥을 이어갔다. 이후 2016년 홈 리테일 그룹이 영국의 주요 슈퍼마켓 체인인 ‘세인스버리’에 인수되면서 해비탯도 자연스럽게 세인스버리 산하 브랜드로 편입됐고, 현재는 세인스버리 슈퍼마켓 채널을 통해 일부 제품만을 판매하고 있다. 브랜드 자체는 살아남았으나 과거와 같은 프리미엄 홈퍼니싱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은 사실상 희미해진 셈이다.

이 밖에 힐스는 1810년 설립된 영국 대표 가구 브랜드로, 해비탯과 함께 영국 모던 디자인을 선도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온라인 쇼핑 급성장과 글로벌 리테일 시장 경쟁 심화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경영난을 겪었다. 현재 힐스는 현대적인 디자인 강화와 온라인 판매 채널 확장을 통해 재도약을 시도하고 있지만 과거의 명성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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