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요란한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가 마지막 길도 누구보다 조용하게 떠났다. 지난 11일(현지시간) 88세로 별세한 호크니의 장례식이 단 두 명만 참석한 채 비공개로 치러진 것으로 전해졌다.
BBC와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21일 호크니의 홍보 담당자 에리카 볼턴을 인용해 장례식이 이미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고인의 뜻에 따라 극소수만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장례식장에는 오랜 파트너인 장피에르 곤살베스 드 리마(61)와 조카손자인 사진작가 리처드 호크니(33)만 자리했다. 두 사람은 모두 호크니가 2008년 설립한 데이비드 호크니 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볼턴은 “호크니의 장례 절차와 추모식에 대해 많은 문의를 받았다”며 “호크니의 분명한 뜻은 장례식에 그의 파트너와 조카손자만 참석하고, 두 사람의 사생활이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예술가였지만 화려한 의전과 공개 행사를 꺼렸던 그의 성향이 마지막 순간에도 반영된 셈이다.
실제로 호크니는 1990년 영국 정부가 제안한 기사 작위를 거절했다. 이후 13년 뒤인 2003년 한 지역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종류의 상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내 친구들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장례식은 조용히 마무리됐지만, 예술가로서의 삶을 기리는 공식 추모 행사는 세계 곳곳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내년 봄 런던에서 첫 추모식이 열리며 이후 그의 고향인 영국 요크셔와 프랑스 파리,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 생애 주요 무대였던 도시들에서도 기념 행사가 개최된다.
또 호크니가 소장해 온 작품 상당수는 예술적 유산 보존을 위해 전 세계 재단과 공공기관에 기증될 예정이다.
1937년 영국 요크셔주 브래드퍼드에서 태어난 호크니는 1960년대 팝아트 운동을 대표한 인물 중 한 명으로, 70년에 걸친 경력 동안 생동감 있는 색채와 혁신적인 표현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6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1967) 등 햇살 가득한 수영장 그림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예술가의 초상’(1972)은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1000억원에 낙찰돼 당시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말년까지도 아이패드 드로잉 등 새로운 예술 형식을 탐구했던 그는 70여 년 동안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힌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호크니의 별세 소식에 찰스 3세 국왕은 그를 “수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친구이자 영감”이었다고 추모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영국에서 가장 찬사를 받은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며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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