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 800점 남기고도 사망진단서에는 '무직' [화폭역정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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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 모리조의 ‘와이트섬의 외젠 마네’(1875). 1874년 결혼한 뒤 이듬해 떠난 신혼여행지에서 모리조가 남편을 그린 첫 작품이다. 남편 외젠 마네는 인상주의 거장 에두아르 마네의 동생이다.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한때로 보이지만 19세기 부르주아 여성에게 주어진 제약을 드러낸 동시에 깬, 양면을 다 잡은 그림이다. 외부 공간에 나설 수 없어 실내나 정원에만 머물러야 했던 여성 화가의 시점이 제약이지만, 기존 ‘남성 화가의 여성 모델’ 대신 ‘여성 화가의 남성 모델’이란 파격으로 그 제약을 단숨에 깨버렸다. 캔버스에 유채, 38.1×46㎝.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프랑스 파리) 소장.여기, 세상이 열광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누구나 찬사를 아끼지 않는 걸작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름다운 작품, 화려한 명성 뒤에 숨은 화가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지독하게 어긋난 운명, 고단하고 허무한 삶이었노라고 말입니다. 이데일리는 오랜 시간 ‘그림이 하는 말’을 들어온 이윤희 미술평론가와 함께 세계미술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천재작가들의 인생역정을 더듬습니다. 단순한 일대기를 넘어섭니다. 뜨거운 예술혼이 맞닥뜨린 차가운 현실, 그 쓸쓸한 생이 한사코 밀어냈을 결정적 장면을 엿봅니다. 삶이 묻고 그림이 답합니다. 캔버스에 굽이치던 화가의 인생길 ‘화폭역정’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께 다가섭니다. <편집자> [이윤희 미술평론가] ‘무직.’ 여성화가 베르트 모리조(1841∼1895)가 세상을 떠났을 때 프랑스 파리 16구청이 사망신고서 직업란에 적은 내용이다. 흔히 여성의 직업란은 무직으로 써넣어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8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기고 인상주의의 일원으로 꾸준히 활동했던 화가를 무직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쉰넷의 나이로 눈을 감은 모리조는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동생 외젠 마네(1833∼1892)의 부인이었기에 묘비에는 ‘외젠 마네의 아내 베르트 모리조’라고만 새겨졌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저 직업란이 기이하게 다가오는 것은 모리조야말로 대가가 될 조건을 거의 갖췄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프랑스 중부 셰르 도의 지사를 지낸 고위관료였고 재정적으로 풍요로웠다. 딸의 교육, 특히 음악과 미술을 가르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집안에는 로코코 미술의 대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1806)와의 혈연관계가 자랑처럼 전해졌다. 예술이 핏줄을 타고 흐른다는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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