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게 삶과 죽음을 잇는 실들…암이 앗아간 생명을 감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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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출신 작가 시오타 치하루의 개인전 ‘Return to Earth’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최되며, 작가의 암 투병 경험을 담은 작품들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번 전시에는 생명의 순환과 정체성을 주제로 한 조각과 설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작가는 실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표현하고 있다.

치하루는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관람객들에게 자연과 우주와의 연결을 느끼게 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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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출신 작가 시오타 치하루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개인전
암 투병 경험 작품으로 승화
조각·설치·회화 대표작 펼쳐
“매순간 인간은 새로 태어나
결국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

시오타 치하루의 ‘The Self in Others’(2024) 연작. 인체 모형의 파편들을 실로 감싼 조각들로, 한 인간을 이루는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가나아트

시오타 치하루의 ‘The Self in Others’(2024) 연작. 인체 모형의 파편들을 실로 감싼 조각들로, 한 인간을 이루는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가나아트

어느 날 암이 찾아왔다. 고통은 뱃속의 6개월 된 아기도 앗아갔다. 모든 게 끝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고, 몸도 마음도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다. 일본 출신 작가 시오타 치하루의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그의 실은 서로 얽히고 섥히며 공간을 가로지르거나 인체 조각을 감싼다. 손 끝의 실로 완성된 오브제들은 하나같이 생명의 순환과 자연의 섭리를 가리킨다. 때로는 유기적으로 생명을 유지해주는 혈관 같고, 때로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뻗어나가는 나뭇가지 같다. 그것은 좌절이 아닌 깨달음이었다.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실을 엮는 작가’ 시오타 치하루의 개인전 ‘Return to Earth(땅으로의 귀환)’이 오는 9월 7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해 일본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에서 선보였던 주요 작품들을 한국에서 처음 공개하는 자리다. 암 투병 경험이 있는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삶과 죽음, 실존과 정체성에 대한 사유를 담은 조각·설치 등 실을 매개로 한 대표작들과 20대 미대생 시절 완성한 초기 회화 작품을 한자리에 펼친다.

인간의 장기를 닮은 유리 조각을 모세혈관처럼 가늘고 촘촘한 붉은 철사로 감싸 완성한 ‘Cell’(2025) 연작은 생명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로 향하는지 질문한다. 여기에는 생명을 이루는 세포조차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암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한 작가의 사유가 집약돼 있다. 암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생명은 파괴와 생성이 반복되는 하나의 순환 과정 속에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병은 내 시선을 몸의 깊숙한 곳으로 이끌었다. 나는 육체가 사그라든 뒤에도 잔존할 재료를 다루고 싶어졌다. 이 유리 오브제들은 철사에 감겨 구속된 듯 보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로 재생되고 변화한다. 철사는 그것들을 억제하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항암 치료를 받던 내 몸과 닮아 있다. 자라나던 암세포들이 제거되고, 새로운 세포들이 자리를 채워가는 것처럼. 유리는 인간의 몸과 같이 연약하기 그지없지만, 열과 압력을 견디고 다시 태어난다.”

시오타 치하루 ‘Cell’(2025). 가나아트

시오타 치하루 ‘Cell’(2025). 가나아트

시오타 치하루 ‘Return to Earth’(2025). 가나아트

시오타 치하루 ‘Return to Earth’(2025). 가나아트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The Self In Others’(2024)에서는 직접적으로 인체 조각이 등장한다. 자궁 속 아기, 두개골과 뼈 등 파편화된 인체 모형 일부가 각각 철제 프레임 안에 들어 있고 그 주위를 붉은 실이나 검은 실이 이들을 감싸는 동시에 서로를 잇고 있다. 작가가 병원과 해부학 책에서 접한 인체 모형을 하나씩 모으면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한 작품이다. 치하루는 “친구가 신장 이식을 받게 됐는데 이식을 받은 뒤 싫어하던 생선을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이렇게 음식에 대한 취향까지 장기로 인해 바뀌는 걸 보면서 ‘어디까지가 나고 어디부터는 내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실은 감정과 기억, 관계의 흐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구조를 시작화해주는 매개체다. 그 안에서 무수한 교차점을 형성하는 실은 개인과 세계, 자아와 타자,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동시에 얽히고 흐트러진 형태로 인간 존재의 복합성을 담아낸다. 치하루는 “처음엔 화가를 하고 싶어서 미술을 시작한 것은 맞는데 하다 보니 누군가를 모방하는 것 같았고 정체성이 잘 찾아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실로 작업을 하게 된 것”이라며 “실제 그림은 아니지만 실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바닥에 쌓인 흙과 사방의 천장에서부터 그 흙을 향해 늘어뜨린 검은 실로 완성된 공간설치 작품으로 끝이 난다. 작품명은 전시명과 같은 ‘Return to Earth’(2025)다. 결국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과 우주의 일부라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는 치하루는 “우주를, 중력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연결시켜보자는 생각을 했다”며 “우주를 표현할 때 자주 쓰는 색상이 검은색이다. 그래서 우주와 연결된 나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검은 실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2022년 개인전에서 치하루는 소설가 한강의 작품 ‘흰’에 영감을 얻어 흰색 실로 공간을 가득 메운 설치 작품 ‘In Memory’를 선보인 바 있다. 한편 가나아트는 지난 25일 서울 용산구 호텔 하얏트 서울 1층에 새로운 전시 공간 ‘가나아트 남산’을 개관했다. 개관전은 시오타 치하루의 개인전을 가나아트센터와 연계해 선보인다.

시오타 치하루의 초기 회화 작품. 작가의 유화 작품 5점 중 3점을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인다. 가나아트

시오타 치하루의 초기 회화 작품. 작가의 유화 작품 5점 중 3점을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인다. 가나아트

시오타 치하루가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시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송경은 기자

시오타 치하루가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시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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