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에 ‘조 단위’ 실적 눈앞인데…정유사들 웃지 못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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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건설 현장. 원유를 정제해서 석유화학 원료를 생산하는 TC2C, 높이 118미터의 프로필렌 분리타워, 연간 180만톤의 에틸렌을 생산하는 스팀크래커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에쓰오일 제공)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건설 현장. 원유를 정제해서 석유화학 원료를 생산하는 TC2C, 높이 118미터의 프로필렌 분리타워, 연간 180만톤의 에틸렌을 생산하는 스팀크래커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에쓰오일 제공)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가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업계가 올 1분기(1~3월) 전년 대비 급등한 실적을 거뒀다. 원유를 직접 생산하는 아람코 등 글로벌 석유 메이저는 물론 이를 수입해 가공하는 국내 정유사도 조 단위 영업이익을 냈다. 다만 정제 마진에 의존하는 국내 정유업계의 이익은 유가 급등으로 인한 일시적 효과가 커, 향후 유가가 하락할 경우 실적 악화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쟁에 일제히 오른 석유사 실적

10일(현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올 1분기 조정순이익(일회성 비용 등을 제외한 실질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한 336억 달러(약 49조4592억 원)였다고 밝혔다.

이런 대규모 순이익 발생에는 2월 말 발발한 중동 전쟁의 영향이 적지 않다. 주요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며 전 세계에서 물류 차질이 빚어졌으나, 아람코는 아라비아반도 내륙을 직선으로 관통하는 송유관을 가동해 우회 수출에 나섰다. 오히려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 수혜를 본 것이다. 전쟁 전 하루 700만 배럴이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수출 물량은 소폭 줄었으나 유가 상승분이 이를 압도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 유가는 3월 들어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169.75달러(3월 23일)까지 치솟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아람코는 이번 분기 평균 수출가격이 배럴당 76.90달러로, 직전 분기(64.10달러) 대비 20%가량 올랐다고 밝혔다.

고유가로 인한 실적 상승은 다른 메이저 석유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쉘은 1분기 조정순이익 69억1800만 달러(10조1757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4% 늘었고, 영국계 BP 역시 31억9800만 달러(4조7039억 원)로 1년 만에 132% 급증했다.

●에쓰오일도 4년 만에 최대 이익국내 정유업계 역시 에쓰오일을 시작으로 줄줄이 ‘어닝 서프라이즈’를 예고하고 있다. 11일 에쓰오일은 1분기 영업이익 1조2311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에쓰오일 기준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였던 2022년 2분기(4~6월) 이후 약 4년 만에 거둔 분기 최고 실적이다. 13일 실적 발표를 앞둔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 모두 1분기에 조 단위 영업이익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만 정유업계에서는 이 같은 호실적이 유가가 채굴 가격 이상이면 무조건 수익이 나는 글로벌 메이저 석유회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한다. 정유사는 원유를 사온 뒤 가공해 파는 중간 단계의 ‘정제 마진’이 핵심이다. 만일 들여오는 석유 가격이 높아져 정제 마진이 하락한다면 손실을 보게 된다.

실제 에쓰오일도 1분기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6434억 원)은 전쟁 전 저가에 확보한 원유 가치가 판매 시점에 급등하며 발생한 ‘재고 관련 이익’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전쟁으로 인해 항공유, 경유 등 정유사가 만드는 석유제품 가격이 오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업계 내부에서는 이란 전쟁이 끝나고 유가가 하락할 경우 현재 고가에 들여온 원유로 인해 반대로 분기당 조 단위의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편 이날 석유화학업체인 롯데케미칼 역시 재고 이익 등에 힘입어 1분기 영업이익 735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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