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가득 채운 선들…평면 드로잉의 한계를 벗어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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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선을 소재로 한 작가 4인의 기획전 ‘선과 획 사이’가 6월 8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범중, 이길래, 안재홍, 윤향란의 대표작 30여 점이 소개되며, 각 작가 특유의 선 표현을 통해 미술의 기원을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안재홍 작가는 관람객에게 존재의 감정을 담아낸 인체 조각을 통해 깊은 울림을 전달하고, 윤향란은 3차원 공간에서 자유롭게 선을 그려내며 새로운 드로잉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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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영미술관 ‘선과 획 사이’
김범중·이길래·안재홍·윤향란
선을 소재로 작업한 4인 조명

안재홍 ‘나를 본다-자라다’(2005). 김종영미술관

안재홍 ‘나를 본다-자라다’(2005). 김종영미술관

전시장이 온통 선(線)으로 가득 찼다. 어떤 구리선들은 벽면에 바짝 붙어 구불구불 서로 얽히고 섥힌 채 인체 형상을 이루고, 철사를 색색의 캔버스 천으로 감싸 만든 선들은 3차원 공간을 유영하듯 자유롭게 뻗어 있었다. 평면 드로잉을 이루는 선의 한계를 보란 듯 벗어던진 것이다.

선을 소재로 작업하는 김범중·이길래·안재홍·윤향란 등 작가 4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기획전 ‘선과 획 사이’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오는 6월 8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근작을 포함한 네 작가의 대표작 3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선은 그림의 시작”이라며 “선으로 이뤄진 네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가 우리 미술의 발원을 되짚어 보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장은 각 작가의 작품을 보여 주는 4개의 방으로 꾸며졌다. 안재홍 작가와 윤항란 작가는 입체 작업을 펼쳤다. 안 작가는 구리선을 구부리고 엮어 나뭇가지를 연상시키는 인체 조각을 만든다. 그는 “나무와 존재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나와 같구나’ 하며 감정이입돼 각인된 순간이 있었다. 붙박이 생의 나무가 비바람에 요동치는 모습은 존재에 대한 몸짓으로 다가왔고, 나무처럼 목놓아 온몸으로 아우성치고 싶었다”며 “그 이미지가 작업의 큰 축으로 작용해 나뭇가지의 조형성은 인체를 표현하는 주요한 요소가 됐다”고 밝혔다.

안 작가의 인체 조각엔 인생사의 오만 가지 감정이 뒤엉켜 있다. 초기작인 ‘나를 본다-자라다’(2005)는 머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떨군 5명의 인체 형상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는 당시 작가가 경험한 불안이 투영된 것이다. 안 작가는 “초기엔 내 이야기에서 출발했는데 육아와 작업을 병행하던 당시 여성으로서 느꼈던 움츠러든 감정과 사회적으로 어정쩡한 나의 포지션에 대한 침잠 같은 게 있었다”고 설명했다.

윤향란 ‘즉흥 드로잉’(2025). 김종영미술관

윤향란 ‘즉흥 드로잉’(2025). 김종영미술관

이길래 ‘Drawing 2023-2’(2023). 김종영미술관

이길래 ‘Drawing 2023-2’(2023). 김종영미술관

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즉흥 드로잉’(2025) 연작을 선보인다. 3차원 공간에 자유롭게 선을 펼치는 공간 드로잉 작품이다. 윤 작가는 “원래는 평면 회화 작업을 했는데, 드로잉을 더 잘해보고 싶어서 3차원 공간에 철사로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초기엔 특정 대상을 표현했는데 어느 순간 거기에 작업이 갇힌다는 생각이 들어 몸이 가는대로 선을 뻗어나가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단순히 철사만 구부려 놓은 것이 아니다. 회화를 입힌 캔버스 천을 자르고, 일일이 손으로 바느질해 철사를 감쌌다. 회화에서 출발한, 일종의 ‘회화 조각’인 셈이다.

이길래 작가와 김범중 작가는 평면을 미세한 선으로 채우는 수행 끝에 만물의 이치를 담은 기하학 무늬를 얻었다. 이 작가의 ‘Drawing’ 연작은 한 가지 색으로 물들인 한지 위에 얇은 쇠못과 나무로 만든 미세 펜으로 먹물을 찍어 무수히 많은 스트로크(짧은 선)를 그어 완성한다. 이름 그대로 못끝으로 그린 드로잉이지만 워낙 촘촘하게 면을 채운 덕에 그 모습은 회화나 다름 없다. 하지만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 보면 손톱 크기의 스트로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수많은 선들은 무언가에 이끌린 듯 하나의 흐름을 만들면서 화면 위 한두 개의 중심을 향해 수렴한다. 본래 ‘소나무’ 조각가로 알려진 이 작가는 “회화에서나 조각에서나 드로잉은 작가의 호흡이라고 생각한다”며 “모두가 잠든 밤, 고요하게 이뤄지는 ‘Drawing’ 작업엔 우주 만물의 순환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장지에 오로지 연필로 작업을 하는 김 작가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선 긋기로 정교한 화면을 완성한다. 그는 작업 노트에서 “만물에 내재하는 파장은 보이기보다는 들리는 것이기에 시각적 단서는 최소화하고 시공간의 한 토막에 무한한 주름을 집어 넣는다”며 “무한한 시간의 축을 따라 다르게 접혀지고 펼쳐지는 주름은 실재의 다양성을 보여주려 한다”고 했다. 연필은 재료 특성상 수정이 가능하지만 그의 작품에선 지우거나 덧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일정한 간격과 길이로 세밀하게 계산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뜻 보면 컴퓨터 그래픽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의 손길을 거쳐 저마다 조금씩 다른 선들은 인간다운 멋으로 깊은 울림을 준다.

김범중의 ‘Coherence’(2024·왼쪽)와 ‘Threshold’(2025). 김종영미술관

김범중의 ‘Coherence’(2024·왼쪽)와 ‘Threshold’(2025). 김종영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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