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올해 1분기 역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후 강행한 각종 관세 정책이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미 상무부는 30일 1분기 경제성장률(속보치)이 -0.3%(전분기 대비 연율 기준)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 로이터, 팩트셋 등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 0.3~0.8%보다 한참 낮은 수치다. 미국 경제가 뒷걸음질 친 것은 2022년 1분기(-1.0%) 이후 3년 만이다. 미국 경제는 작년만 해도 1분기 1.6% 성장에 이어 2분기 3.0%, 3분기 3.1%, 4분기 2.4%로 성장 가도를 달렸다.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이 성장 정체에 빠진 상황에도 미국 경제는 ‘나홀로 성장’을 했다.
올 들어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은 ‘트럼프 관세’ 여파가 컸다. 지난 2, 3월 철강·알루미늄 관세, 대중국 관세에 이어 4월 자동차 관세와 각국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기업들이 사전에 재고를 쌓기 위해 수입을 늘린 게 마이너스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전날 발표된 미국의 3월 상품 무역적자는 전월 대비 9.6% 급증한 1620억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정책에 따른 파급효과가 처음으로 나타난 사례”라고 했다.
고용 둔화 조짐도 뚜렷하다. 미 노동부가 집계한 지난달 구인 건수는 719만2000건으로 6개월 만에 최소치를 찍었다. 관세 부과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에 소비심리도 위축됐다. 미 경제조사단체 콘퍼런스보드가 집계한 4월 소비자신뢰지수는 전월 대비 7.9포인트 낮은 86.0으로 5개월 연속 하락세가 이어졌다. 2020년 5월(85.9) 후 최저치다. 기업들도 관세 불확실성을 이유로 잇달아 실적 전망 자체를 취소하는 등 경기 침체 신호가 커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100일께 맞는 첫 성적표가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비판 여론이 커질 전망이다.
수출 1.8% 늘때 수입 41% 껑충…기업들 "관세전 재고 쌓아두자"
바이든 탓으로 돌린 트럼프…"관세와 무관 … 인내심 가져라"
관세 정책을 최대 성과로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출범 100일을 기념한 직후 ‘마이너스’ 경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전혀 없다” “관세로 대규모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다”고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실제 경영 현장에서는 무역 적자폭이 커지고 고용이 줄어드는 등 관세 충격파가 현실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 급증·소비는 둔화
30일 미 상무부가 발표한 올 1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 따르면 전체 GDP 증가율을 끌어내린 건 수입 급증이었다. 수출은 1.8% 증가하는 데 그쳤는데 수입은 41.3% 늘어나 순수출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상품 수입은 50.9%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수입 증가가 1분기 성장률을 5%포인트가량 낮췄다고 상무부는 설명했다.
정부 지출도 1분기 1.4% 감소하며 역성장에 기여했다. 특히 연방정부 지출이 5.1% 줄어들었다.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개인소비는 1.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직전 분기 4% 대비 둔화했다.
다만 민간 투자는 설비 투자가 크게 늘면서 21.9% 급증했다.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이 선제적으로 투자를 확대한 영향이다.
관세 여파로 소비자 및 기업의 경제 심리가 악화한 가운데 2분기에도 역성장을 이어가면 미국 경제는 기술적 경기 침체에 접어든다. 다만 1분기 지표만으로 경기 흐름을 읽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분기 GDP에는 관세 시행을 앞두고 재고 확보가 반영돼 왜곡이 있을 수 있다”며 “경제 충격을 과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2분기 수입이 줄면 성장률이 회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GDP 발표 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인 트루스소셜을 통해 역성장은 자신의 관세 때문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것은 (전 대통령인) 조 바이든의 주식시장이지 트럼프의 것이 아니다. 나는 1월 20일(취임일)까지 정권을 넘겨받지 않았다”고 썼다.
이어 “나쁜 숫자는 관세와는 무관하다”며 “바이든이 남긴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또 “곧 관세가 본격 발효될 것이고 기업은 사상 최대 규모로 미국으로 이전하고 있다”며 “번영이 시작되면 이전에 없던 수준이 될 것이니 인내심을 가지라”고 말했다.
◇불확실성에 감원 나선 기업들
관세 정책의 여파는 고용 시장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물류업계에서 먼저 신호가 나타났다. 경기 흐름을 가장 먼저 반영해 ‘경기 풍향계’로 불리는 UPS는 전날 연내 전 세계 인력의 4%에 해당하는 2만 개 일자리를 감축하고, 오는 6월까지 미국 내 물류 시설 73개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관세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캐럴 톰 UPS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00년 동안 세계는 이처럼 막대한 잠재적 영향에 직면한 적이 없다”며 “관세가 주요 불확실성 요인으로 부상한 지금 비용 절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미국 자산운용사 아폴로는 5월 중국발 미국행 컨테이너선 운행이 중단되고 6월 초부터 물류·소매업계에서 해고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물류뿐 아니라 제조·소매 업종으로 충격이 확산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고 봤다.
한경제/임다연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