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일 경기 양주시 양주치매안심센터에서 본보가 만난 ‘치매머니 공공신탁’(치매안심 재산관리 서비스) 1호 가입자 전모 씨(84)의 이야기다. 치매 공공신탁은 국민연금공단이 치매 또는 경도인지장애 환자와 계약을 맺고 최대 10억 원의 현금성 자산을 관리해 주는 서비스다. 시범사업 도입 두 달여 만에 총 118명이 신청해 계약 4건이 체결됐다.
무연고 홀몸노인인 전 씨는 공공후견인 덕분에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전 씨가 5만 원, 10만 원씩 돈을 들고 나갔다가 늘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후견인이 치매 공공신탁을 신청했다. 인지 능력이 떨어져 깊은 대화는 어려웠지만 전 씨는 연금공단 사회복지사의 설명을 듣고 궁금한 것들을 또박또박 물었다.
“혹시 아프면 어떡해요?”(전 씨) “병원에 가도록 도와드릴 거예요.”(복지사)“(계약하면) 어떤 혜택이 있어요?”(전 씨) “맡기신 돈은 어르신 뜻을 존중해 사용할 겁니다. 치매센터와 함께 필요한 것들도 지원해 드릴 거예요.”(복지사)
공공신탁 계약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전 씨는 “나라에서 내 돈을 관리해 준다니 기분이 아주 ‘베리 굿’”이라며 밝게 웃었다.
국내 치매 노인은 100만 명, 보유한 자산은 약 172조 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들을 치매머니 사냥꾼으로부터 보호할 안전망은 여전히 헐겁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2024년 치매 노인 대상 경제적 학대 판정 사례 379건 중 197건(52%)은 자녀와 친인척 등 친족이 가해자였다. 요양병원 등 시설 종사자(31.9%)와 이웃 등 지인(11.9%)을 포함하면 가해자의 96%는 피해자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이들이었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공공신탁을 도입했지만 기대만큼 신청자가 많지 않다. 제도를 서둘러 도입하려는 의욕만 앞섰을 뿐 준비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 치매안심센터나 신탁 신청을 받는 국민연금공단 지사 담당자들조차 사업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신청자들이 혼선을 겪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치매머니의 약 77%가 부동산인데, 신탁 대상이 현금성 자산으로 제한된 것도 신청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공공 후견인’ 제도가 뿌리내리지 못한 것 역시 공공신탁이 부진한 이유 중 하나다. 치매안심센터에 등록된 홀몸 치매 노인은 약 20만 명에 이른다. 돌봄에서 소외된 이들에겐 후견인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지난해 11월 기준 수혜자는 730명에 불과하다. 건강할 때 후견인을 지정하는 ‘임의 후견’ 신청자도 300명에 못 미친다. 반면 일본은 그 숫자가 12만 명이나 된다. 지역마다 치매후견지원센터를 두고 정부와 사회가 치매 노인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치매 노인은 직접 신청하거나 이용하기 어렵다. 사각지대 치매 노인에게 ‘다가가는 복지’가 시급하다.
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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