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맨 끝줄 소년’을 보며 최근 한 작가에게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실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가 윤리적 논란에 휘말리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어, 아예 상상으로만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작가도 “사적인 대화를 동의 없이 인용하거나 실제 경험을 작품에 썼을 때 명예를 훼손했다는 반발이 일어나는 경우도 잦다”며 “이른바 ‘재현의 윤리’를 피하기 위해 공상과학(SF)이나 판타지를 택하는 작가들도 있다”고 전했다.
‘맨 끝줄 소년’은 명문대 국문학과 교수 허문오(최민식)와 학생 이강(최현욱)이 주인공. 어느 날 이강은 수업 과제로 유명 작가 김수훈(허준호)에 대한 글을 써 온다. 공교롭게도 김수훈은 허문오의 대학 시절 친구이자 오랜 열등감의 대상. 자신이 짝사랑했던 여성과 결혼하고 작가로도 성공한 김수훈을 질투해 왔던 허문오는 이강에게 상상을 덧붙이라고 부추긴다. 더 재밌는 글을 위해 거짓을 보태고 사실을 조작하라고 한다.
이 작품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창작의 윤리’를 떠올려 보게 된다. 제목 속 ‘맨 끝줄’은 자신은 눈에 띄지 않은 채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다. 그 자리에선 타인의 말과 표정, 감춰진 관계가 자세히 보이지만 정작 바라보는 자신은 드러나지 않는다. 드라마 원작의 희곡을 쓴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는 2013년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맨 끝줄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으면서 타인을 관찰하는 사람이 차지하는 자리이자 작가가 서 있는 자리”라고 했다.그런데 문제는 현실을 썼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 어떤 방식으로 가져와 바꿨느냐에 있다.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단서는 남겨두지 않고, 실제로 하지 않은 행동이나 존재하지 않았던 일을 덧붙였다면 어떨까. 여러 사람이 한 일을 한 인물에게 투영해 선명한 악역으로 만들었다면 그것은 창작의 자유일까 아닐까. 2024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국 드라마 ‘베이비 레인디어’는 극 중 스토커로 표현했던 캐릭터의 배경이 됐던 실제 인물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드라마 ‘맨 끝줄 소년’에서 이강이 처음부터 거짓말만 썼던 건 아니다. 그의 글 역시 직접 보고 들은 현실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글이 재미있어질수록 눈앞의 사람을 한 인간이 아니라 서사를 위한 재료로 보기 시작한다. 허문오 역시 김수훈에 대한 질투를 해소하고 자신의 실패를 보상받기 위해 이강을 이용한다.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명분 아래 한 사람의 삶을 수단으로 바라본다.
시청자들도 두 캐릭터와 완전히 무관할 순 없다. 드라마를 보는 우리도 이강이 다음에는 누구의 삶에 침입하고 어떤 비밀을 끄집어낼지 궁금해하며 다음 화를 이어간다. 갈수록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요구하는 세상이라, 창작자는 어느새 현실을 가짜 이야기로 바꾸고 있는 게 아닐까.드라마를 연출한 김규태 PD는 21일 전화 통화에서 “보고 싶거나 듣고 싶은 이야기만 보고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며 “창작자와 시청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던져주고 싶었다”고 했다. 결국 ‘맨 끝줄’에 앉은 우리도, 사실의 경계를 지키지 않으면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이호재 문화부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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