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월 집권 1기 취임사에서 도심 빈민, 녹슨 공장, 망가진 교육 제도 등 ‘산산이 깨어진 아메리칸드림’을 상징하는 장면들을 줄줄이 언급했다. 또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통해 이를 해결하겠노라고 외쳤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처방전은 똑같다. 자신의 전매특허 무기인 관세다. 8년 사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첫 임기에도 꺼냈던 칼날을 이번에는 더욱 예측불허로 휘두르며 ‘세계 대학살’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제지표들이 휘청이지만 백악관 내의 한 측근은 “트럼프는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워싱턴포스트(WP)에 한탄했다.
이 학살극을 두고 미국의 경제 전문가들조차 우려와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한국처럼 상호관세의 직격탄을 맞은 아시아 국가들의 시선에서 예측해 봐도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결국 ‘미국이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원인 진단도, 처방도, 결과 예측도 전부 잘못된 자가당착이기 때문이다.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관세로 피해를 본 대표 업종으로 내세우는 자동차도 그렇다. 그는 지난주 “도요타는 미국에 100만 대를 팔지만 GM의 차는 일본에서 거의 한 대도 팔리지 않는다”며 “(무역장벽 때문에) 미국 기업은 다른 나라에 진출할 수가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미국 차가 일본에서 안 팔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공정 무역 탓이란 주장은 거짓이다. 미국은 일본에 자동차 관세 2.5%를 부과하지만 일본은 이미 1978년에 대미 관세를 없앴기 때문이다.
문제는 따로 있다. 일본 소비자들은 작고 효율적이고 ‘가성비’ 좋은 차를 선호한다. 일본 자동차 기업은 비슷한 취향의 미국 틈새시장을 공략해 성공했다. 또 독일 명품 자동차 기업들은 일본의 고급 차 시장을 장악했다. 결국 미국 자동차 기업들은 일본에서 인기 없는 덩치 큰 모델을 고집해 실패한 것이다. 이른바 ‘아메샤’라고 불리는 미국 차들은 고장이 잘 나고 연비가 낮다는 인식도 강하다. 적자의 원인을 존재하지도 않는 무역장벽에서 찾는 잘못된 인식은 일본의 자동차 시장 외에도 많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렇게 모로만 갔다간 ‘무역적자 해결’이 아닌 엉뚱한 목적지에 도착할 가능성이 크다.인도는 한때 평균 관세율이 130%에 육박하는 폐쇄적 경제를 운용했다. 그 탓에 경제 발전에서 뒤처진 ‘구경꾼의 나라’로 전락했다고 인도 옵저버연구재단의 미히르 샤르마 선임연구원은 토로했다. 1991년 경제 개방 전까지, 그에게 ‘메이드 인 인디아’는 자부심이 아니라 ‘한물간 저품질’을 인정하는 딱지였다.
‘메이드 인 USA’ 라벨의 미래는 다를 것이라고 과연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학살’을 막기 위해 휘두르는 ‘세계 대학살’의 칼은 이대로라면 결국 ‘미국 대학살’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다.
홍정수 국제부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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