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형준]‘불통의 상징’으로 전락한 용산 대통령실이 남긴 교훈

2 weeks ago 7

황형준 정치부 차장

황형준 정치부 차장
1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입구에 위치한 행정안내동은 한적한 모습이었다.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직무정지 이전까지 대통령실이 주관하는 각종 회의나 행사 참석을 위해 방문 출입증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던 평상시 모습이 사라진 것.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용산 대통령실 정문에 걸린 봉황기가 내려졌고, 청사 1층에 위치한 윤 전 대통령의 활동사진이 나오던 전광판도 정지됐다. 청사 정면에 그대로 걸려 있는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라는 현수막이 무색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차기 대선 주자들이 당선 시 용산에 가지 않겠다는 뜻을 보이면서 사실상 ‘용산 시대’는 3년 만에 끝을 맺게 됐다. 청사가 도감청에 취약하다는 보안상 우려와 함께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파국이 군에 둘러싸인 용산의 지리적 위치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도 명분이 되고 있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우리는 철거민 신세”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부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은 당 복귀나 선거캠프행을 택하기도 하고 할 일이 없어진 직원들은 자리만 지키거나 청사 주변을 산책하며 매일 하루에 3만 보씩 걷는다고 한다.

불과 3년 전 윤 전 대통령은 용산시대를 열며 “제왕적 대통령제의 상징인 청와대를 나와 최고 지성들과 가까이서 머리를 맞대고 일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주겠다며 청와대도 개방했다. 대통령 집무실에 원형 테이블을 놓아 소통하고 같은 층에 수석실 등도 자리 잡게 해 수시로 토론하겠다고 홍보를 했고, 도어스테핑 등을 통해 국민을 대표한 기자들과 상시 소통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하지만 이 같은 윤 전 대통령의 초심은 지켜지지 못했다. 소통은 명분에 그쳤을 뿐 용산 이전 결정은 윤 전 대통령 부부의 무속신앙에 대한 믿음과 무관치 않다는 ‘주술 논란’이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은 참모들과의 소통도 없이 ‘충암파’ 등 소수와 상의해 반헌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도어스테핑은 본인 뜻과 달리 불편한 질문이 나오자 61회 만에 폐지됐다. 소통의 상징이었던 용산이 윤 전 대통령의 독선과 독단으로 불통의 상징이 돼버린 것이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국민 혈세만 낭비됐다.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3월 당선인 시절 496억 원의 예비비를 신청하며 “1조 원이니 5000억 원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근거가 없다”고 단언했지만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832억 원이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합동참모본부의 이전 비용까지 합치면 수천억 원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각 당의 대선 주자들은 대부분 용산 대신 청와대 복귀나 세종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보듯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실이 옮겨진다면 혼선과 혈세 낭비만 반복될 뿐이다. 대통령실 이전은 대선 후보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각 당의 중장기적인 계획이나 비전 아래 국민 여론 수렴을 위한 사회적 공론화위원회 등을 거쳐 결정돼야 할 것이다. 대통령실의 지리적 위치를 바꾼다고 성공한 정부로 남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윤석열 정부에서 얻길 바란다. 대선 다음 날 취임하는 차기 대통령은 용산에 들어가지 않겠다면 청와대나 정부서울청사 등에 임시 집무실을 얻은 뒤 어디로 옮길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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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준 정치부 차장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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