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이 21일(현지 시간) 적도기니 말라보 국립대학 레오 14세 캠퍼스에서 문화계 인사들과 만나고 있다. 2026.04.22 말라보=AP 뉴시스
레오 14세 교황이 과거 자동차 트렁크에 숨은 채 미국으로 밀입국해 정착한 엘살바도르 출신 사제 에벨리오 멘히바르아얄라 주교(56)를 웨스트버지니아주 휠링찰스턴 교구장으로 1일 지명했다. 지난해 5월 최초의 미국 출신 교황으로 즉위한 레오 14세는 즉위 전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을 비판해 왔다. 중미 불법 이민자 출신을 고위 사제로 발탁한 것 또한 레오 14세의 반트럼프 성향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멘히바르-아얄라 교구장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멘히바르아얄라 주교는 미국 최초의 엘살바도르 출신 주교다. 일곱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엘살바도르 내전을 피해 1990년 미국으로 밀입국했다. 네 번의 시도 끝에 자동차 트렁크에 숨어 국경을 건넜다.
이후 수도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에 정착해 청소부, 공사장 인부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당시 성당을 다니며 검정고시를 보고 영어를 배웠다. 2004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2년 뒤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멘히바르아얄라 주교는 2022년 레오 14세의 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워싱턴 대교구 보좌주교로 발탁됐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이며 ‘빈자(貧者)의 성인’으로 불린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불법 이민자에 대한 포용을 거듭 강조해 왔다.
멘히바르아얄라 주교는 주교 발탁 당시 누가복음 24장 15절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는 문구를 강조했다. 교회가 이민자, 한부모 가정, 독거노인 등 소외 계층을 껴안아야 한다는 취지다.
또한 그는 지난해 4월 가톨릭 일간지 기고에서 “연방정부가 부당한 이민 단속을 강행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악(惡)과 공모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복시 3세 주교
한편 레오 14세는 1일 멘히바르아얄라 주교의 후임 워싱턴 대교구 보좌주교로 흑인인 로버트 복시 3세(46)를 발탁했다. 복시 3세는 봉헌 후 미국 내 최연소 주교가 될 예정이다.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을 공개 비판한 이력이 있다. 그는 1980년 루이지애나주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로 일했다. 2016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워싱턴의 흑인 명문 대학 하워드대의 학내 사제 등으로 활동해 왔다. 그는 지난해 8월 가톨릭 통신사 ‘OSV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 폐기는 비(非)미국적이고 비기독교적”이라고 비판했다. 또 흑인 투표권을 보장한 1965년 투표권법이 도입 60주년을 맞았지만 다양성을 겨냥한 공격으로 미국 사회가 후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