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안 좋은 환경을 방치하면 사람의 의식과 행동도 부정적으로 변한다는 말이죠. 학교도 마찬가지예요. 환경이 바뀌면 아이들이 달라집니다.”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14일 권영기 서울 성동고 교장은 자신의 교육철학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교원대 1기 졸업생인 권 교장이 교직에 발을 들인 지 어느덧 34년. 그는 1만 명이 넘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생의 태도와 학습 동기는 물리적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권 교장은 이런 교육철학에 따라 2022년 성동고에 부임한 뒤 도서관 리모델링에 착수했다.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을 벤치마킹한 서울교육청 관할 최초의 복층 구조 도서관이다. 개방감을 살리고 학습카페 분위기를 조성해 학생들이 더 자주 방문하도록 설계했다. 그는 “좋은 공간이 생기니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더라”며 “학생들이 교내에서 가장 즐겨 찾는 장소”라고 말했다.
권 교장 부임 후 성동고가 도서관 리모델링을 포함해 학교 환경 개선에 투자한 금액은 90억원에 달한다. 직접 발로 뛰며 교육청·지방자치단체 예산과 공모사업을 따냈다. 권 교장이 교육계에서 ‘재정 감각과 추진력을 모두 갖춘 리더’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그는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 공립학교가 학생의 선택을 받으려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 교장은 “올해 (성동고) 신입생의 전국연합학력평가를 보니 상위권 비율이 지난해보다 높아졌더라”며 “좋은 환경이 학생을 끌어들이는 선순환이 시작됐다”고 했다.
학교 경쟁력 제고는 해외 명문대와의 협력으로 이어졌다. 성동고는 연내 미국 위스콘신대와 입학 전형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성동고 학생이 학교장 추천 전형으로 위스콘신대에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권 교장은 “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가 아닌 일반고가 이 같은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건 매우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
교육 현장 변화를 이끌어 온 권 교장의 원동력은 ‘1호 교사’로서의 책임감이다. 1989년 대학을 졸업하며 받은 교원자격증에는 ‘교원대 제1호’라는 번호가 찍혀 있다. 그는 “수석이어서 1호인 건 아니고 이름 가나다순으로 받은 번호”라며 “우연히 받은 1호 타이틀이지만 그 숫자가 주는 책임감이 크다”고 말했다.
1호 타이틀의 무게가 유독 무겁게 느껴질 때면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만난 담임교사를 떠올린다. 권 교장은 “내성적이고 학습 성취도가 낮았던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준 선생님”이라며 “그 덕분에 성격도 밝아지고 수업이 즐겁다는 걸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사랑은 받아본 사람이 더 잘 줄 수 있다”며 “내가 받은 만큼 학생들에게 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교권이 약해지면서 교대 지원 기피 현상이 심화하고 있지만 권 교장은 “교사는 여전히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믿는다. 그는 “미래 세대에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직업”이라며 “누군가의 인생에서 ‘귀인’이 될 수 있다는 건 참 보람찬 일”이라고 강조했다. 권 교장은 그러면서 “교사의 전문성이 존중받고 사회적 대우가 뒷받침되면 지금의 교권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