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예의 이심전심] 친절한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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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의 이심전심] 친절한 도서관

10년 전 청송 객주문학관에 머무르고 있을 때, 청송교도소를 탐방할 기회가 있었다. 모니터에 뜬 중죄인의 독방이 이상하게 인상적이었다. 감시 시스템만 없다면 그곳은 좁고 밀폐돼 오로지 한 가지 일, 글쓰기에만 몰두할 수 있는 곳. 우습게도 내가 가장 글을 잘 쓸 수 있는 공간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집안에 조용한 서재와 집필실이 있어도, 역시나 생활 공간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이 잘 안 써졌다. 집은 익숙함을 매개로 한 나태함이라는 내성이 이미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핑계 같지만 작가들은 내적 긴장과 자발적 집중을 내 안에서 끌어올려줄 장소를 찾는다. 나는 고립된 진공상태를 좋아해 최근에는 스터디카페라는 공간을 가끔 이용했다. 조명이 잘 된 칸막이 안에서 무음 키보드와 자판을 이용하니 쾌적하고 의외로 몰입이 잘 됐다. 다만 실내를 관리하는 여자 사장님이 언제부터인가 내게 호기심을 보였다. “신춘문예 준비하시나 봐요. 나이 드셔도 이렇게 열심히 도전하는 모습이 저희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는 네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이후로 왠지 글이 더 써지지 않았다.

그러다 참으로 몇 년 만에 집 근처 구립도서관을 가보게 됐다. 예전에 집필실이 없던 젊은 시절엔 도서관에 노트북을 들고 가 글을 많이 썼다는 생각이 났다. 그러나 거기도 공부하는 젊은 사람으로 가득하고 어린이책 열람실에는 자녀와 함께 온 어머니가 제법 보였다. 나이 지긋한 사람은 보이지 않아 좀 머쓱했다.

그때 내 눈을 잡아끈 게 바로 시니어를 포함한 지식정보 취약계층을 위한 ‘북나름’ 서비스다. 60세 이상 동네 거주민 1인당, 관내에 있는 도서 다섯 권을 2주간 대출받는 건 기존 다른 도서관 서비스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전자상거래의 비대면 서비스를 벤치마킹한 북나름, 즉 책을 날라주는 차별화한 배송 서비스야말로 이 도서관의 특별한 점이다. 나는 당장 신청했고, 이용해 보니 이 서비스가 전국에 퍼지길 바랄 만큼 매료됐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관내에 있는 도서를 골라 장바구니에 넣고 공동현관 비번 표시를 한 주소로 신청하면 바로 현관문에 도서 다섯 권이 든 백이 걸려 있다. 2주 안에 다 읽은 책은 다시 회수 신청을 하고 현관문에 걸어 두면 회수해간다. 이 배송 작업을 60세 이상 어르신들이 한다니 노인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인도 문헌정보학자 랑가나단의 도서관학 5법칙 중에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다’라는 법칙이 있다. 인간에게 생로병사가 있듯이 도서관도 급변하는 시대의 수요와 필요에 따라 성장하고 변화한다. 요즘 도서관의 다양한 변신은 참으로 놀랍다. 미술관 옆 도서관이 아니라 미술관을 품은 도서관 식이다.

남녀노소 즐기는 도서관이지만, 활동력이 약한 시니어도 책이라는 지적 재산을 이렇게 비대면으로 편리하게 잘 이용할 서비스가 있으니 대접받는 기분이다. 사실 글쓰기와 달리 책이 가장 잘 읽히는 도서관은 나의 경우 마이홈 도서관이다. 집에서 소파나 침대에서 뒹굴거나 누워서 읽는 독서의 맛이 최고다.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을 찾아 여행하고픈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외관은 아름답겠지만, 분위기에 압도된 나 자신은 박물관 조각상처럼 얼어 있을 것 같다.

곧 어김없이 장마철로 접어드는 우기의 계절이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다. 오히려 장마철이야말로 무료로 책을 배송해주는 북나름 서비스를 만끽하며 무한한 책 속의 여행을 떠나는 계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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