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애국주의' 부상하는 美 실리콘밸리

14 hours ago 1

알렉스 카프 
팰런티어 CEO

알렉스 카프 팰런티어 CEO

“군대와 협력에 반대하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공학 엘리트들이 누리는 평화와 자유는 바로 그 군대의 힘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알렉스 카프 팰런티어테크놀로지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월 발간한 책 <기술 공화국>을 통해 실리콘밸리의 양면성을 이렇게 비판했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주류로 부상하는 ‘기술 우월주의자’의 사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이들은 자유주의와 애국주의를 중요 가치로 여기며 실리콘밸리가 과거와 같은 ‘미국의 무기고’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머 러키 
앤듀릴인더스트리 CEO

파머 러키 앤듀릴인더스트리 CEO

카프 CEO는 “실리콘밸리의 공학 엘리트층은 전쟁 억지력을 높이기 위한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갖췄지만 군을 위해 일하는 데 회의적”이라며 “이들은 비디오 공유 앱, SNS 플랫폼, 광고, 온라인 쇼핑 등에 자금을 조달하는 데 열중하며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앤드루 보즈워스 메타 최고기술책임자(CTO)는 5일 블룸버그 테크서밋에서 “실리콘밸리는 군사력 개발을 목표로 설립됐으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력한 애국심이 깔려 있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의 체제 경쟁에서 최전선이던 실리콘밸리의 기원을 불러낸 것이다. 당시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지원을 받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반도체, 인터넷, 위치정보시스템(GPS) 등 혁신 기술을 탄생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는 군과의 협력을 반기지 않았다는 게 기술 우월주의자의 문제의식이다. MS는 2018년 말 미 국방부와 군용 증강현실(AR) 헤드셋 개발 계약을 맺었지만 50명 이상이 반대 서한을 보내는 등 내부 반발에 부딪혔다. 구글 역시 2019년 미 국방부의 AI 군사 프로젝트 ‘메이븐’을 맡기로 했으나 직원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했다.

이런 분위기는 기술 우월주의자들이 주목받으며 바뀌는 추세다. 메타는 지난달 29일 앤듀릴인더스트리와 미군용 헤드셋 및 고글 등 확장현실(XR) 기기 개발을 위해 협력한다고 발표했다. 앤듀릴인더스트리는 오큘러스 VR을 개발한 파머 러키 CEO가 메타를 퇴사해 2015년 창업한 방산 기업이다. 러키 CEO와 팰런티어 창업자 피터 틸은 대표적인 기술 우월주의자다.

이들은 중국과의 군사력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국방 혁신에도 앞장서고 있다. 앤듀릴은 적의 무인 항공기를 탐지·추적하는 방어 체계와 AI로 실시간 지형 지물을 분석하며 비행하는 드론을 개발한다. 대당 수억원인 드론으로 1000억원 넘는 전투기, 수조원에 이르는 군함을 상대한다. 러키 CEO는 중국의 2027년 대만 침공을 기정사실로 상정하고 이때 사용할 수 있는 무기만 개발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김인엽/고은이 기자 inside@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