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친절 도시 1위 글라스고
150년 전 한글로 한국과 인연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은 결국 ‘사람’
현지인 사로잡는 첫 ‘한국의 날’ 개최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도시는 어디일까. 런던, 뉴욕, 도쿄 같은 대도시를 떠올리기 쉽지만, 나는 주저 없이 영국 글라스고를 꼽는다. 2022년 타임아웃 글로벌 조사에서 2만 명 이상의 응답자가 ‘세계 친절도 1위’로 선택했고, 현지인의 78%가 스스로를 ‘친절한 도시 사람’이라 자부했다. 2024년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 조사에서도 97.14점으로 영국 내 친절도 1위를 다시 거머쥐었다. ‘사람이 글라스고를 만든다(People Make Glasgow)’는 말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다. 진심 어린 환대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이 도시는, 데이터가 증명한 세계 최고의 정(情)의 도시다.
한국인에게 글라스고는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두 나라의 인연은 150년을 훌쩍 넘는다. 그 시작에 글라스고 대학교 출신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가 있다. 그는 “한글은 30분이면 배울 수 있을 만큼 단순하고 아름답다”며 한글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봤다. 1877년 한글 역사상 최초로 띄어쓰기를 도입한 《한국어 첫걸음(Corean Primer)》을 펴냈고, 1887년에는 최초의 한글 신약전서 《예수성교전서》를 간행했다. 종교를 넘어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깊이 존중했던 그의 발걸음은, 글라스고의 따뜻한 마음씨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을 향해 뻗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런 글라스고에서 나는 어느새 8년 반을 살았다. 처음엔 낯선 이방인이었지만, 이 도시의 온기가 그 낯섦을 금세 녹여주었다. 아이를 키우며 이웃과 나눈 소소한 대화들, 동네에서 마주친 따뜻한 눈빛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이 지역공동체에 무언가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던 중 한인교회 목사님으로부터 한인회 회장직을 맡아달라는 권유를 받았다. 처음엔 부담이 앞섰지만, 이번엔 내가 봉사할 차례라는 생각에 덜컥 수락했다. 막상 회장직을 맡고 행사를 직접 조직하고 운영해 보니, 그전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관찰하고 깨달은 것들을 나누고자 하는 작은 시도다.
첫 번째 깨달음은 리더 자리의 무게였다. 회장을 맡고 나서 먼저 한 일은 사람들에게 공동체에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돌아온 아이디어 중 하나가 귀에 꽂혔다. 글라스고의 음악•예술 분야 한인 인재들을 중심으로, 스코틀랜드 현지인들이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행사를 열자는 제안이었다. 때마침 K팝 데몬 헌터스의 활약으로 영국 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던 참이었다. 흐름을 타기에 지금이 적기라는 판단에 ‘Korea Day in Glasgow’를 추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일이 굴러가기 시작한 순간, 예상치 못한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리더는 안팎으로 약속을 주고받으며 사람들의 기대를 끊임없이 조율해야 한다. 돕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언제든 빠질 수 있지만, 일단 시작되면 탈출구가 없다는 것, 그것이 리더의 자리였다.
두 번째 깨달음은 조직의 경계에 관한 것이었다.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공식 조직의 경계는 멤버십(membership)에 있다고 했다. 글라스고 한인회는 공식 조직의 외관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비공식 공동체에 가까웠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한인 공동체는 활발히 작동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이 곧 한인회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한인회에는 회장이라는 직함만 있을 뿐, 회원 명부가 없었다. 누구나 멤버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누구도 진정한 멤버가 아닌 셈이었다. 이 사실은 행사를 기획하면서 더욱 선명해졌다. 모두에게 응원은 받았지만, 그 누구의 일도 아니었다. 행사 준비는 결국 한인회라는 조직의 실제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시험하고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세 번째 깨달음은 결국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준비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힐 때 마다, 자기 일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들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명예란 탁월함(arete/virtue)에 수반되는 최고의 보상이라 했다. 부회장, 홍보위원장, 예술위원장, 학생회장, 연주자, 문화원 관계자, 팔을 걷어붙인 조력자들 그리고 옆에 도와준 아내까지, 그들이 보여준 헌신이야 말로 탁월함이었고, 각자의 역할에 대한 인정은 한인회가 건넬 수 있는 가장 진정성 있는 예우라고 생각한다. 이 마음들이 하나로 모여 오는 4월, 글라스고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첫 번째 ‘한국의 날’ 행사를 마침내 열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성취의 공은 시작과 끝을 같이 함께하는 이들의 것이다.
[김동휴 글라스고대학 아담스미스 경영학 부교수]




![[단독]“이재명 암살단 모집” 글 올린 30대, 협박죄로 기소](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6/04/20/133772707.1.jpg)












English (US) ·